꼭 가보고 싶었던 토론회가 있었는데, 장소가 세종시에 있는 한 국책연구기관이었다. 아쉽지만 포기하려고 했는데 온라인으로 중계한다고 나와 있었다. 번거롭게 시간을 낼 필요도 없고, KTX를 타지 않아도 된다니!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기만 하면 어디에서든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토론회뿐만 아니다. 지난 학기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재택근무, 스마트워크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벌써 어느 정도는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회의를 하거나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는,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생각이 순식간에 깨지고 있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19가 바꿔놓은 풍경이다.

정부 중앙 부처들이 세종시로 오래 전에 옮겼지만 수많은 공무원들은 아직도 서울과 세종시를 매일같이 오가고 있다. 대통령 보고나 국회에서의 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회의 한 시간 참석 때문에 오는 데 두 시간, 가는 데 두 시간이 걸리니 길 위에서 하루를 다 보내느라 정작 일할 시간이 없다는 푸념도 그냥 앓는 소리만은 아니다. 이러한 비효율성을 질타하며 언론은 꾸준히 대통령과 국회도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나? 이미 2005년에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위헌확인’ 결정에서 “일부 행정기관들이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한다고는 하나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하여 화상회의와 전자결재 등 첨단의 정보기술을 활용하면 장소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불편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므로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어떠한 지장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그 이후로도 지난 15년 동안 IT 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했다. 이제는 비싼 시설과 장비를 갖추지 않더라도 노트북이나 태블릿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의사소통에 참여할 수 있다. 서울과 세종시가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다.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

물론 온라인으로는 대체하기 어려운 오프라인의 특성이 분명히 있다. 의사소통의 효율성부터 문제다.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라든가 눈빛, 분위기가 화면 상으로만 얼굴을 볼 때는 생생하게 전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명시적으로 반응을 하기도, 피드백을 받는 것도 여의치 않다. 접속자가 여럿일수록 피로도는 더욱 높아진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열린 태도로 대화할 수 있어야 생산적인 의견 교환이 가능할 텐데 말 한마디 할 때도 더 조심스럽게 긴장하게 된다. 회의든 수업이든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긴 한데 제대로 전달이 되고 명확하게 공유가 된 것인지 석연치 않게 찜찜한 기분으로 끝낸 적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 차례 온라인 회의를 거듭하면서 오히려 더 크게 쌓인 오해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 회의가 필요할 때도 있다. 뿐만 아니다.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다고 그냥 회의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인 의사소통도 많다. 처음 보는 사이라면 명함을 교환하고 이미 아는 사이라면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안부 인사를 주고 받다가 당일 모임의 용건 이외에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기도 된다. 회의를 진행하다가도 서로 견해 차이가 크면 잠시 멈추고 쉬면서 상대방의 진의를 따로 확인하거나 의견을 조율할 수 있다. 갈등이나 대립으로 회의가 다소 과열되더라도 식사나 뒷풀이 자리가 이어지면 그 물꼬가 엉뚱하게 트이기도 한다. 온라인 접속으로는 모두 쉽지 않은 일들이다.

기술 발전의 빠른 속도를 법, 제도, 정치 등 비물질문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켜 문화지체(Cultural Lag)라고 한다. 공간적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사소통의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는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왔지만, 긴 이동시간을 감수하더라도 한자리에 다같이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방식은 사회적 문화의 관성 탓인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화상회의는 현지시간에 맞춰서 외국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던 와중에 난데없는 팬데믹으로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방식의 회의나 수업을 집단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나면 회의는,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지, 온라인 방식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될지 궁금하다.

프로필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노동법 전공) ▲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 ▲전 국회의원 비서관 ▲(사)노동법이론실무학회 이사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역자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