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정책, 출력 변동성, SMP 하락에 ‘사면초가’
‘퇴출’ 놓고 발전사업자 vs 환경단체 ‘갑론을박’
안정적인 전력공급 책임지는 정부 어깨 갈수록 무거워져

환경, 전력계통에 이어 경제성까지 석탄발전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면서 석탄발전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에너지수요 감소와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전력 도매가에 해당하는 계통한계가격(SMP)이 연일 하락하고 있다.

국제유가와 국내 SMP는 연쇄반응에 의해 시차를 두고 연동되기 때문인데 이 SMP 하락은 발전사업자들의 매출, 수익과 직결되므로 SMP는 발전사업자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SMP는 한 시간 단위로 급전지시를 받은 발전기 중 전력생산을 위해 가장 많은 변동비를 지급하는 발전기의 변동비에서 형성되는데 SMP를 결정하는 발전기는 주로 가스발전기다.

그러나 최근 가스발전 변동비가 석탄발전 변동비보다 저렴해질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발전단가에는 아무래도 발전연료 가격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LNG 가격이 내려가다 보니 ‘급전순위 역전’ 현상이 예상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석탄발전은 1㎾h 전력을 생산하는 데 소요된 비용을 거의 그대로 정산받는 ‘노 마진’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가스발전이 석탄발전보다 저렴해지는 상황을 놓고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송전망은 석탄·원자력을 위주로 설계돼 있는데 석탄이 받던 급전을 LNG가 받게 되면 전력계통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경제급전 제도에서도 계통안정이 최우선 고려사항이기 때문에 급전지시가 어떻게 이뤄질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혹은 ‘발생할 것이다’ 정도지만 앞으로 지금의 유가가 유지되면서 ‘비싼 석탄’이 새로운 질서, ‘뉴노멀(New Normal)’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석탄발전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화력발전사들은 모두 당분간 어려운 시기를 보낼 전망”이라면서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라며 한숨 쉬었다.

◆환경·계통에서 이미 ‘경고등’ 켜진 석탄발전

지난해 3월 기록적인 ‘미세먼지 공습’ 이후 석탄발전의 입지는 급속도로 좁아졌다.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대책을 수립해 이행하기 시작했고, 당장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석탄발전의 과감한 감축을 선언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석탄발전의 역할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단체들은 1기의 석탄화력발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자세로 발전사들을 압박하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한국이 각종 환경 관련 정책·계획을 지키기 위해서는 석탄발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안고 갈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미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돼 건설·운영되고 있는 석탄발전소를 강제로 폐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선행돼야 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가동 후 30년’을 기준으로 노후 석탄발전 설비를 퇴출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발전업계로부터는 “자동차를 5년만 쓰고 폐차하는 꼴”이라는 반발을, 환경단체로부터는 “한국은 2050년에도 석탄화력을 7GW나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석탄발전이 기술적인 문제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분석마저 나왔다.

재생에너지 출력이 높은 시간대에 전력수요가 줄어드는 ‘덕 커브’가 일상화되면 중간에 낀 석탄발전은 계통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출력제한이 전력계통 운영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으며 전문가들은 육지에서도 이르면 2030년쯤 덕 커브로 인해 석탄발전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전력 분야 한 전문가는 “신재생에너지 출력이 높아 기저발전과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우선순위를 둘지에 대한 논의가 지금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양수발전으로 커버할 수 있는 양도 한계가 있는 만큼 신재생에너지가 가진 출력 변동성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략은 신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하거나 다른 발전원의 가동·중지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전자를 선택한다면 더 이상의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무의미하고, 후자를 선택한다면 출력변동에 대응하기 어려운 원자력과 석탄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감 등 현실적인 이유로 중간에서 합의점을 찾는다고 해도 석탄발전은 발전단가가 월등하게 저렴한 원자력발전에 밀릴 수밖에 없는 그림이다.

결국 석탄발전은 환경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출력변동이라는 악재에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성 상실’이라는 초대형 악재를 맞이하게 되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설명이다.

◆그래도 석탄은 살아야 한다...노력하는 발전사업자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석탄발전 역할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책임지는 역할을 내려놓더라도 전력산업에서 퇴출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전공기업 관계자들은 “여름과 겨울철에만 급증하는 국내 전력수요의 특성을 활용해 석탄발전을 ‘콜드 리저브’ 방식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콜드 리저브’는 전력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봄과 가을에는 석탄화력의 성능을 유지하는 선에서 관리하다가 여름이나 겨울철 전력수요가 늘어날 때 한시적으로 석탄화력을 가동하는 방법이다.

석탄발전소 수명으로 통용되는 30년은 임의로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관리 여부에 따라 50~6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발전업계·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변동폭이 크지 않은 국제 유연탄 가격이 석탄발전의 경제성을 담보한다는 분석도 많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국제유가에 따라 석탄발전이 경쟁력이 없지만 유가는 변동성이 심한 특성이 있다”며 “국제유가가 올라가면 LNG 가격이 오르는 것도 자명한데 만약 석탄발전소를 다 없애면 그때 가서 속수무책으로 전기요금이 올라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에너지 전환기에 발전사업자들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기존 화력발전의 환경설비에도 투자를 이어가는 등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발전공기업을 중심으로 저탄장 옥내화, 환경설비 강화 등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으며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기 위한 사업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거의 모든 에너지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으면서도 전기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수출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 석탄·원자력 등 기저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국내·외적으로 급격한 에너지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삼중고’에 허덕이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포지셔닝에 성공할지, 아니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발전업계와 산업계 전체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신재생에너지와 가스발전, 석탄·원자력발전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으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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