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인 ‘E.H 카’가 남긴 말이다. 우연이 계속해서 겹친다면 과연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전선(케이블)’을 출입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우연히’ 두산건설의 미얀마 송전로 구축사업이 수상하다는 제보를 받았다. 두산건설이 중국업체에 시공부터 자재까지 턴키로 사업을 넘겼다는 것.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사업으로 진행되며 국내 관련 업계에서도 기대했던 사업이지만 두산의 계약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비보도를 전제로 증거를 제시해달라 했지만 두산건설은 뚜렷한 증거 없이 ‘오해’라며 넘겼다.

신기하게도 얼마 후 후배 기자가 출입하는 철탑업계에서도 ‘우연하게도’ 똑같은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걸 듣게 됐다. 서로 다른 업종에서 같은 소문이 ‘우연히’ 돌고 있는 상황. 그것도 한참 전부터.

재취재에 들어간 지금도 두산건설의 입장은 변함없다.

그러나 재취재를 통해 과거 EDCF 사업에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로 EDCF 사업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이 해당 사업에 대한 전선·철탑 업계의 문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코로나19로 신규발주가 귀해진 상황에서 절박하고 이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업체 대표들은 꼭 자사의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만약 SK건설이 EDCF 차관사업으로 진행하다 6000여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라오스 댐 붕괴 사고처럼 현지에게 손해를 끼치고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 실추로 이어진다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시장의 진출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고 누가 답해줄까.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가장 잔인한 거짓말은 흔히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은 우리나라의 ODA(국제개발협력) 홈페이지에서 EDCF에 대한 설명이다.

‘관리 주체는 기획재정부가 되며 실질적인 업무는 기획재정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수출입은행이 EDCF라는 기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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