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모듈 사용 가장 큰 이유는 ‘가격경쟁력’
국산 태양광 시장 무역장벽 역할 기대
中산과 가격 좁힐 인센티브 수준이 관건

한국 태양광 산업이 중국의 저가 공세를 넘은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2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태양광 모듈에 대한 ‘탄소인증제’를 통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올해 태양광 분야에 도입한 다양한 정책들을 두고 기술집약형 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이 사실상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원년이 되고 있다는 것.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 태양광 시장은 기술경쟁력보다 가격경쟁력이 우선시되는 곳이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중국산 태양광 모듈 수입액은 1억6954만3000달러(약 2043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22.0%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98.4%로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다.

이처럼 중국 태양광 기업들이 한국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높은 가격경쟁력이 자리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국산 모듈의 경우 중국산 대비 10~15%가량 가격대가 높게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점차 발전하면서 사실상 국내 제품과 비교할 때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게 복수의 태양광 발전사업자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국내 태양광 시장의 확대가 오히려 중국 기업들의 설 곳만 키워준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탄소인증제를 통해 태양광 시장의 기술경쟁력의 영향력을 더욱 키운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추진해 온 다양한 정책을 통해 기술 중심의 시장을 만들기 위해 힘써 온 정부가 마지막 조각으로 탄소인증제를 선택한 셈이다.

◆탄소인증제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2일부터 태양광 탄소인증제 운영고시와 세부산정‧검증기준 제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탄소배출량 검증신청 접수에 나선다고 밝혔다.

태양광 탄소인증제는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모듈로 이어지는 태양광 모듈의 밸류체인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계량화(CO₂‧kg)하고 검증하는 제도다.

이 온실가스의 총량은 모듈 제조과정에서 직접 발생되는 배출량을 비롯해 소비된 전력생산을 위한 배출량까지 합산해 평가된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비슷한 제도인 ‘탄소발자국’을 운영하고 있다.

EU에서도 유사제도를 도입할 계획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탄소배출량 저감에 대한 경험과 기술 등을 축적해 해외시장 진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산업부는 탄소배출량에 따라 모듈을 ▲1등급(670kg‧CO₂/kW) ▲2등급(670 초과 830kg‧CO₂/kW) ▲3등급(830kg‧CO₂/kW) 등 총 3등급으로 구분한다.

이 등급에 따라 당장 올 하반기 실시될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의 선정입찰시장과 정부보급사업 등에서 등급별로 차등화된 인센티브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정부가 아직까지 논의 중인 인센티브 제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사실상 인센티브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결정되느냐가 탄소인증제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음달 중에는 인센티브 관련 규정까지 손질될 것이라는 게 담당기관인 에너지공단 측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인센티브는 국산 제품을 사용할 경우 중국산 제품과의 가격 차이를 충분히 좁힐 수 있는 수준에서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역시 중국 제품과 가격싸움에서 겨뤄볼 수 있는 수준까지 인센티브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업자들이 탄소등급이 높다 하더라도 굳이 국산제품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술경쟁력 중심의 태양광 시장 형성될까= 업계 일각에서는 탄소인증제 도입이 국산 태양광 시장의 무역장벽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대부분 중국산 모듈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인 가격경쟁력을 단박에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재생에너지 확대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비중이 높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제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중국산 모듈의 가격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는 것. 1등급 제품을 사용했을 경우 태양광 보급사업에서의 지원규모가 사실상 가격 차이를 좁힐 수준까지 인센티브 제도가 마련된다면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모듈의 기술력 차이가 된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미 올해 태양광 모듈에 대한 최저효율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한국산업표준(KS)에 최저효율기준을 신설, 일정 수준 이상 효율이 나오는 모듈만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또 이달부터 개정된 태양광 설비 시공기준이 시행되면서 태양광 주요설비에 모두 KS 인증 제품을 사용하게끔 했다.

단순히 가격경쟁력이 우위를 차지하던 그동안의 한국 태양광 시장에 최소한의 품질 기준을 만들어 기술력 확보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끔 기반을 닦은 것이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탄소인증제 도입이 가격 중심의 시장을 기술 경쟁력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충분한 인센티브 확보를 통해 가격 싸움에서 동등한 수준까지 국산 제품의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기술력 확보가 시장에서의 선택기준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 같은 시장의 변화는 대부분 산지로 이뤄지고 도시는 빌딩으로 가득 찬 국내 국토 상황에 맞춰 보다 효율적으로 태양광을 보급하기 위한 선결 과제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태양광 모듈 기술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효율에서 발생한다. 단위면적당 얼마만큼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느냐를 두고 기술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효율이 높을수록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야 국내 여건에 맞춰 태양광 설비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해외기업 준비태세도 만만치 않아= 이번 탄소인증제를 두고 국산 태양광 시장의 발전을 위한 제도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국 시장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 역시 경쟁력 확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안주해서는 안 될 상황이라는 것.

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최근 한국뿐 아니라 탄소세를 적용했거나, 할 계획인 유럽시장 등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을 활용한 제품 생산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몽골 등 일부 지역에 대량으로 건설한 재생에너지 설비를 중심으로 저탄소 제품 확보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언이다.

한 중국계 기업 관계자는 “이미 중국 본사에서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며 “이미 프랑스 탄소발자국제도에 발맞춘 준비를 해 오고 있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프랑스와 한국 시장이 요구하는 저탄소 기준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계 기업 일부는 국내에 셀 및 모듈 공장을 설립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특히 아직까지 운송 분야에 대한 탄소배출을 계량하는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고 업계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다른 이 탄소인증제를 시행하며 해외 제품에 배나 비행기를 통해 수송하며 발생하는 탄소를 거리별로 부과하는 기준이 마련돼야 하는데, 해당 기준은 아직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중국 기업들이 탄소인증제에 맞춰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국내 생산 제품들의 경쟁력은 그만큼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탄소인증제의 허점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정부의 탄소인증제 도입에 대한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 도입 이후 겪는 애로들을 정부와 지속적으로 논의해 개선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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