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박호정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코로나19의 종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국내 경제가 어떤 부침을 겪을지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얼마 전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세계 경제가 예비 타이어 없는 자동차처럼 회복 탄력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코로나19의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이같이 엄중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자 디지털 뉴딜과 한 쌍을 이루는 그린 뉴딜 정책이 계획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한동안 그린 뉴딜이 세간의 화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의 전신인 뉴딜 정책을 간략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상황은 2차 산업혁명 직후의 시대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량생산과 중산층 확대를 성과물로 내세울 수 있는 20세기 초였다. 하지만 세계 대공황을 계기로 그동안의 성과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부터 뉴딜 정책을 시행했다. 사회안전망 강화와 일자리 증대 정책 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연방정부의 정책권한과 예산 기능이 강화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과거 미국의 뉴딜 정책이나 지금 우리나라의 그린 뉴딜 정책 모두 중앙의 역할이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역사 초기부터 중앙의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대등한 권력 균형을 근간으로 하는 이른바 이중 분권주의(dual federalism)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뉴딜 정책으로 중앙의 권한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초기의 이중 분권주의에서보다 약간 더 연방정부의 권한이 확대된 협조적 분권주의(cooperative federalism)로 이행된 것일 뿐이었다. 협조적 분권주의 하에서는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예산의 수립과 집행, 여러 재정사업들을 상호협력과 견제를 통해 추진하며 중앙 연방정부로부터 전달받은 예산을 주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재량껏 집행한다. 따라서 뉴딜 정책은 태생상 불가피하게 중앙집중적이라는 단순한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촉발이 돼 시작된 우리나라의 그린 뉴딜 정책이 안 그래도 중앙에 집중돼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더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바 역시 협력적 분권화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정부가 그린 뉴딜과 함께 디지털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 뉴딜 정책을 통해 어떻게 분권화를 달성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지역단위에서의 재생에너지를 큰 폭으로 확대하며 스마트 그린도시를 추진하고자 하는 그린 뉴딜 정책은 디지털 뉴딜과 촘촘히 엮을 수 있는 게 많다. 분산전원으로서의 태양광 P2P 거래 시스템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구축할 때에 기상상황, 전체 계통 상 수급, 전력 및 REC 가격 등 정보를 AI로 분석해 자동화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가 발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녹색산단에 스마트 공장 기술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향상을 기하는 동시에 비대면 관리체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초중고 디지털 기반 교육 인프라 구축 사업에는 기후변화나 글로벌 팬데믹, 에너지 이슈 등으로 변동성 높은 21세기에 소비자 및 생산자의 주체적 책임을 가르치는 녹색교육 컨텐츠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모두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할 때에 그 효과가 배가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분권화 관련된 사업들이 그린과 디지털을 키워드로 한 한국형 뉴딜 정책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후세의 평가를 유념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그린 뉴딜 정책 역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체제는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며 각국은 기술 중심의 개발로 성장전략을 도모할 것이다. 우리의 뉴딜 정책이 일시적인 효과로 끝날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할지는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필진이력_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자원경제학회 수석부회장,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신재생분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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