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한 지 어느덧 1년이 돼 간다. 일본은 지난해 7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3대 품목이라고 하는 포토 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한 수출 제한조치를 단행했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이어서 걱정이 적지 않았다. 일본의 보복은 우리 경제에는 그동안 얼마나 타격을 줬을까. 과연 일본은 기대했던 효과를 거뒀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타격은 거의 없었다.

불화수소의 경우 솔브레인이 기존보다 2배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새롭게 증설하는 등 국내 수요에 충분한 공급 능력을 확보했다. 일부 제품의 경우 테스트를 완료해 실제 생산에도 투입하고 있다. SK는 순도 99.999%의 초고순도 불화수소 양산을 시작했다. 불화 폴리이미드 역시 코오롱 인더스트리와 SKC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해 시제품을 테스트 중이다. 일부 품목은 해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포토 레지스트의 경우 국산화 작업은 아직 어렵지만, 유럽으로 수입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나름대로 공급 기반은 확보했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화와 실질적인 공급 안정화를 이루게 된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한다. 평소 같으면 꼼짝도 하지 않았을 국회는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고, 내년 일몰 예정이던 전문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특별법으로 변경돼 상시화됐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위한 특화단지 추진도 결정됐다. 기초·원천기술 조기 확보를 위해 정부 예산을 투입해 자금도 지원한다. 물론 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잠정 중지됐던 일본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는 재개된 상태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우리 산업에 거의 타격을 주지 못했던 반면, 국내의 불매운동으로 인한 일본 기업들의 타격은 컸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과 인피니티는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이후 부진한 판매 실적 때문이다.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인 지유(GU)는 한국 진출 2년 만에 짐을 쌌다. 유니클로의 실적도 하락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맥주도 그렇다. 일본 맥주는 불매운동 전까지 10년간 수입 맥주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2위와의 수입액 격차가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1년 만에 수입액이 90% 이상 줄면서 일본 맥주는 시중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물론 별 영향이 없었던 부분도 있기는 하다. 담배가 그렇다. 불매운동이 1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많은 일본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 혹은 경영난을 겪는 것과 달리 일본 담배는 국내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담배는 기호식품으로 소비자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시장의 특성이 다른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담배를 포함하더라도 종합적으로 득실을 따져서 계산해보면 일본은 수출규제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

사실 소재와 부품, 그리고 장비 산업은 제조업을 혁신하는 동력이다. 핵심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 역량 확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2017년까지 이 산업에서 우리나라의 자체 조달률은 60% 중반에 불과했다.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 산업구조의 취약성을 반성하고 문제점을 고치는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그래서 위기는 때로 기회가 된다고 하는 모양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