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소피의 선택에 의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소피의 선택은 4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로 메릴 스트립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게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소피는 두 아이와 같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독일군 장교로부터 두 아이 중 한 명만 살려주겠다며 한 명을 선택하도록 요구를 받고 결국은 한 명만 선택을 하고 나머지 한 명을 가스실로 보내는 가슴 아픈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지금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최근 코로나로 전 세계가 500만명이 넘게 감염되고 30만명 정도가 죽음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소피처럼 딜레마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국민 안전을 위해 격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경제활동을 재개해 무너진 가계·기업을 살리고 저소득층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풀어야 하지만 재정적자 확대로 국가신용도 하락, 외국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이번 코로나 사태가 전문가들은 거의 예측을 하지 못했던 규모로 확산되고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어 거의 발생할 확률이 없었던 블랙스완 이벤트들이 이제는 보편화가 되고 있다. 또 이번 코로나 확산도 기후 변화와 깊이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한 압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에너지 산업계는 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EIA나 맥킨지 등 중요 기관들의 전망에 따르면 2020년대 중반부터는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에는 지금보다 약 20% 감축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감축에는 석탄 감소가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석탄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현재보다 약 40% 감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석탄 사용 감축 등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의 감축이 가장 큰 효과가 있다. 지금까지는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는 동기화 변수로 인식이 돼 왔으나 최근에는 여러 변수로 이제는 Decoupling 즉 비동기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경제가 성장해도 에너지 소비가 같이 증가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비동기화의 가장 큰 이유는 OECD국가나 중국, 인도 등 주요 에너지 사용 국가들의 산업 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디지털 기술 기반 서비스 산업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어 에너지 밀도가 감소하고 있고 수송분야의 전기 자동차 도입이 늘어나면서 전기화가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또 가전 기기들의 에너지 효율의 급속한 향상과 재생에너지 증가를 이러한 비동기화의 주요 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상대로 수요가 감소하고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재생에너지의 증가가 현실화되면 에너지 산업에도 코로나에 버금가는 에너지 팬더믹 생태가 발생하고 에너지 산업계는 소피의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전환이 정부 주도로 강하게 추진이 되고 있고 수요마저 감소한다면 대형 에너지 회사의 전통적인 비즈니스모델은 지속 가능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특히 대형 발전소에 의지하고 있는 석탄이나 원자력의 경우 더 이상 기저 부하로의 운전이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석탄이나 원자력의 경쟁력은 예상보다 더 빨리 추락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 산업계는 기존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하던 인력과 축적된 기술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생소한 신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늘려가야 하는데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민첩한 소규모의 새로운 경쟁자들과의 경쟁해야 하므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즉 기존의 비즈니스를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 되지만 에너지 전환을 위한 새로운 신산업 진출도 경쟁력이 떨어져 경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 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여 생존을 할 수 있는지는 기존의 인력을 에너지 전환에 적합한 인력으로의 재교육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로 무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며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나중에 영화에 나오는 메릴 스트립처럼 가슴 아픈 소피의 선택에 직면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 안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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