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문제점 지적...전략환경영향평가서 ‘반려’ 주장도
가스발전 확대 골자로 한 계획에 환경단체, 전력산업계, 전문가 모두 ‘부정적’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조정에 따라 전력수요 전망도 조정될 듯...수립 늦어지나

(왼쪽부터)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김윤성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4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 참석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김윤성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4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 참석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친환경’을 키워드로 석탄발전을 과감하게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을 높인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환경단체로부터 외면받으며 ‘사면초가’에 빠졌다.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은 4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9차 전기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날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대체로 9차 전기본이 석탄·원전 등 경직성 전원을 더욱 과감하게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탄이나 원자력 등 전통적인 발전원의 반발을 무릅쓰고 가스발전을 대폭 늘리는 ‘친환경’ 계획을 수립했지만 환경단체로부터 외면받으면서 9차 전기본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계획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환경단체의 요구 수준에 부응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지난달 8일 공개된 초안에 대해 ‘아쉽다’는 수준의 반응이 아니라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해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펴고 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로드맵 수정안’에서 전환부문에 할당한 3410만t의 감축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방법론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온실가스를 어떻게 감축할지에 대한 부분은 노후 석탄화력 폐지 등 다섯 줄이 전부”라며 “연도별 발전시설 진입·퇴출, 석탄발전 제약방식 등 환경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기본 자료조차 제시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9차 전기본이 직전 계획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2030년 이후에도 석탄발전 비중은 31.4%로 가장 높고 8차 전기본과 비교했을 때 석탄발전 평균 가동률은 64.9%에서 72.1%로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환경급전 기조가 후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을 표방한 계획치고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친환경을 표방해놓고 친환경이 아닌’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9차 전기본 초안에서 제시한 2034년 가스발전 설비용량 비중은 31%인데 이에 따른 발전량 비중 전망치는 19.7%다.

2020년 기준 가스발전 설비용량 비중(32.3%), 발전량 비중(25.6%)과 비교하면 오히려 가스발전 비중이 작아지는 셈이다.

◆가스발전 늘린다는 9차 전기본...환경·산업계 모두 ‘외면’

현재로서는 가스발전량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가 각종 제도개선을 통해 급전순위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여 종국에는 가스발전량 비중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석탄발전을 줄이고 가스발전을 늘리는 데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8차 전기본에서 신규원전을 제외한 문재인 정부는 이번 9차 전기본을 통해 석탄발전소마저 선택지에서 지워버렸다.

자연스럽게 가스발전을 늘려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가스발전 역시 화석연료를 활용한 2차 에너지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을 0으로 낮추는 ‘넷 제로’ 달성을 위해 가스발전 역시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너지산업 특성상 급격한 정책의 변화를 가져가긴 어렵지만 어쨌든 미래에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100%를 뜻하는 RE100을 달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9차 전기본 초안에 따르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보다 더 높아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3020’에서 제시한 20%가 천장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게다가 그린뉴딜이 ‘한국형 뉴딜’에 포함되고 국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대폭 확대면서 재생에너지발전이 경제성을 확보하는 ‘그리드 패리티’ 달성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월 카본트래커 이니셔티브와 기후솔루션은 2028년이면 에너지저장장치(ESS) 연계 태양광발전이 가스발전보다 저렴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체건설이 실행될 경우 가스발전소가 앞으로 좌초자산이 될 것이라는 환경단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석이다.

또한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는 9차 전기본 초안이 발표된 직후 발표한 논평을 통해 “전력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수요관리정책은 제출되지 못한 채 전력수요가 예측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발전원과 무관하게 발전설비 증설이 아닌 수요관리를 통해 전력수급을 맞추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화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초안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력업계와 일반 산업계도 가스발전 확대를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전력업계 관계자들은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형성된 한국은 발전단가가 곧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며 “가스발전 비중이 높아지면 발전단가가 상승해 전기요금 인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이 특정 에너지원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도시가스, 집단에너지와 더불어 전력 생산에도 천연가스를 사용하게 되면 국가적으로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할 때 주로 중동에서 들여오는 만큼 중동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거나 코로나19 사태에서 확인했듯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국경이 봉쇄되는 경우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더해 천연가스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경우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진다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원전에 이어 석탄발전도 ‘페이즈 아웃’...기저발전 수난시대

국내 대부분 석탄·원자력발전을 차지하는 발전공기업은 9차 전기본과 관련해 말을 삼가고 있지만 관련 산업계에서는 불만이 계속해서 표출되고 있다.

석탄발전업계에서는 여전히 가동 후 30년으로 설정된 ‘노후’의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국에서는 50~60년까지도 사용할 정도로 30년된 석탄화력발전소는 ‘사용할 수 있는’ 설비라는 것이다.

게다가 발전공기업의 경우 최근 환경설비에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어차피 좌초자산이 될 가스발전을 건설하는 것보다는 성능개선을 통해 환경성을 개선한 뒤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퍼지고 있다.

원자력계는 최근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문제가 불거지자 원자력발전이 해당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석탄발전 대신 원자력발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근 이런 이유에 경기침체가 더해지며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원자력계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9차 전기본에 관심을 가졌으나 해당 논의는 다시 사라진 상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로 대폭 하향 조정한 만큼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영향을 받는 전력수요 전망치가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상반기 내 확정을 목표로 속도를 내던 9차 전기본 수립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였던 법정기한을 이미 넘긴 만큼 업계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계획이 확정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9차 전기본 초안을 놓고 ‘공들인 시간에 비해 내용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 만큼 정부는 최종안의 발표 시점과 내용을 두고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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