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위 역할 명확화 필요…시장 감시권한 줘야”
재생E 간헐성 백업 자원 보상 필요
‘필수사용량보장공제’ 폐지 바람직
저유가인 지금이 연동제 도입 적기
전기요금 탈정치화 시작될 수 있어
탈원전 두고 보수・진보 간 논란 심각
대화 통해 합의점 모색해야

강승진 전기위원회 위원장은 국내의 대표적인 에너지·기후협약 분야 정책 전문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프랑스 그로노블 2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3년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입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여러 차례 참여하는 등 국내 기후협약 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2002년부터는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산업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9월 전기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된 강 위원장은 “에너지전환을 선언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진영논리로 갑론을박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가치관의 문제기는 하지만 이제는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 초안이 발표됐습니다. 간단히 총평을 해주신다면.

“한마디로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더 이상 설비계획이 아니라 정책계획으로 성격이 달라졌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강력한 의지에서 석탄발전을 LNG복합발전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보면 경제성보다는 이제 환경과 안전을 더 우선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됐죠. 환경부가 시행할 전략환경영향평가 기준도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2가지여서 산업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봐요.”

▲9차 계획에서는 최대전력수요를 연평균 1%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우리나라도 전력수요가 어느 정도 포화시점에 달했다고 봅니다. 유럽은 이미 2000년에 전력수요가 피크를 찍고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거든요. 우리나라도 평균 2~3%씩 증가해오다가 지난해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올해도 코로나 여파 로 전력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코로나 사태로 화석연료 사용량이 확 줄면서 온실가스 배출이 17%나 줄었다고 하더라구요. 앞으로도 많아야 1% 내외에서 증가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입니다.”

▲환경과 안전을 이유로 설계수명이 다한 석탄발전과 원자력발전을 폐지하는 것에 동의하시는지.

“민감한 질문이네요. 원전은 안전수명이란 게 있지만, 원전이든 석탄이든 사실 법적 수명이란 게 없습니다. 사업자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수명을 10년, 20년 연장하면 되는 것이죠.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그래왔구요. 신규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기존 발전소를 고쳐 쓰는 것이 경제성 면에서 낫거든요. 그런데 이 정부는 환경과 안전을 이유로 수명연장은 없다고 선언했고, 이렇게 정책적으로 결정된 사안에 따라 정부 계획이 수립되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측면만 본다면 당연히 노후발전소를 고쳐서 쓰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현행 CBP 기반의 전력시장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바람직한 전력시장 제도개편 방향은.

“연료비가 낮은 순서대로 발전기가 가동되는 현재의 변동비반영시장(CBP) 체제는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한시적으로 운영하려던 1단계 시장제도에요. 전 세계에서 CBP로 운영되는 나라는 없어요. 에너지전환 정책과도 부합하지 않죠.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가 많이 들어오는데 CBP시장에서는 하루 전 입찰방식이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게 되면 시장이 뒤죽박죽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선 CBP를 유지한다고 해도 당일 시장, 실시간 시장은 열어서 재생에너지 변동에 따른 가격 변동부분을 상쇄시켜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백업하는 자원에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유연성 자원에 대해서는 보상을 많이 해주고, 경직성 자원은 보상을 적게 해줘야 하죠.

세 번째 장기적으로는 코스트 베이스에서 가격 베이스(가격입찰시장)로 가야 해요. 모든 것을 다 비용으로 환산하려다 보니 민간 석탄발전의 경우 투자비 보상문제가 생기고, 이상한 게임이 되고 있어요. 계약시장도 늘려 현물입찰시장과 이중으로 운영해야 해요.”

▲유가급락으로 지금이 전력구입비 연동제 도입에 적기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전력구입비 연동제 도입에 대해 절대 동감합니다. 연료비 등 전력구입비용이 오르면 전기요금이 올라 전기소비를 줄이고, 내리면 전기요금도 낮아진다는 신호를 줘야 합니다. 고유가일 때는 요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못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연동제를 도입해도 요금이 안 올라가니까 적기인 것이죠. 전력구입비 연동제가 도입되면 전기요금의 탈정치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전기요금이 정치적 셈법에 의해 결정되다보니 한전이 적자가 나도, 흑자가 나도 요금을 조정하는 게 어려웠죠.”

▲바람직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방향을 제시하신다면.

“우선 필수사용량보장공제는 누진제를 완화하면서 편법으로 만들어 놓인 것이어서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정치권의 포퓰리즘이죠. 산업용 경부하요금은 부하평준화에 도움이 됐지만, 이제는 오히려 심야시간에 전기사용량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부작용을 가져오고 있어요. 산업용 평균요금이 오르지 않는 선에서 조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바람직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방향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20년 가까이 중단되면서 이제는 한전과 자회사 간 관계도 예전 같지 않아요. 앞으로 갈수록 점점 이런 구조가 될 것이에요. 다만 긍정적인 면은 민간사업자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죠. 특히 신재생발전사업자도 크게 늘면서 이제는 시장 참여자가 3000개가 넘습니다. 인위적인 통합이나 시장개방보다는 자연스럽게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전기위원회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역할이 축소된 게 사실입니다. 20대 국회에서도 전기위원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는데 전기위원회를 산업부에서 독립할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지.

“전기위원회가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역할이 있었지만, 이제는 산업부 전력시장과가 만들어지면서 상당히 약해진 부분이 있죠.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역할을 명확히 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경기장의 감독(코치)과 심판의 역할이요. 산업부는 감독으로 선수들을 잘 관리하면 되고, 전기위원회는 심판으로서 시장을 감시하는 권한을 줘야 합니다.”

▲최근 전기위원회에서 연료전지 발전사업에 대한 보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적정규모를 넘어서 너무 신청이 많이 들어온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발전사업 허가난 것만 4GW에 달해요. 1년에 설치할 수 있는 물량이 400MW 정도라고 보면 허가를 해줘도 몇 년 동안 설치가 어렵다는 거죠. 특히 민원이 없다는 이유로 수요지인근보다는 지방 산업단지에 설치하겠다는 신청이 많았는데, 분산전원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어요. 게다가 연료전지는 계통측면에서 원자력만큼이나 경직성 전원이에요. 다른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커버해 줄 수가 없어요.”

▲마지막으로 창간 56주년을 맞은 전기신문이나 독자, 에너지업계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에너지전환을 선언한 지 3년이 됐는데 아직도 에너지업계는 탈원전을 두고 보수와 진보 간 논란이 심각합니다. 서로 대화해서 합의점을 모색하면 좋겠는데 평행선만 가고 있는 점이 안타까워요. 앞으로 개선되면 좋겠다는 것이 희망사항입니다. 에너지업계는 전력수요가 최근에 마이너스 일 정도로 둔화되다보니 대규모 투자사업보다는 소규모 분산전원이 대세가 될 것 같습니다.

전기신문에게 바라는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말고 전문성 있는 심층분석 기사들을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여론을 수렴하고 객관적인 기사제공을 통해 양극단에서 대립하는 사람들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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