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인력 검침의 무인화 바람, AMI 순풍 타려면...
전기소비자 요금선택권 확대…AMI 보급이 관건
한전, 사업추진 과정서 어려움 겪어 보안 취약성 등 기술적 문제 발생
계량기 소유문제로 아파트 포함 안돼 AMI보급 공백 우려
작성 : 2020년 05월 12일(화) 09:37
게시 : 2020년 05월 21일(목)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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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비교(원/kWh)(왼쪽), OECD국가별 주택용 전기요금비교(출처:IEA, Electricity Information, 2017)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전환이 일어나면서 전력산업 지형도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계량기가 전력사용량을 검침하고 요금을 부과하는 용도로만 사용됐다면 이제는 계량 값으로 할 수 있는 합리적 소비 서비스를 구상하는 시대가 됐다.
이를테면 계절별, 시간대별로 전기료가 다른 요금제를 선택한다거나 검침일을 변경해 전기요금 누진제 부담을 완화하는 시대, 더 나아가 전기를 비축하거나 내 집 근방의 이웃에게 전기를 사고파는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다. 다만 이를 위해선 소비자의 전력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축적·분석돼야 한다. 지능형검침인프라(AMI) 보급사업의 출발배경이다.
AMI는 양방향 원격검침으로 소비자의 전력사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한전에 전송해 전기요금을 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되면 인력 검침은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무인화 시대로의 전환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AMI 보급사업이 2010년부터 시작됐다.
2020년까지 2250만호에 AMI를 설치한다는 비교적 간단한 계획안이지만 과정이 말처럼 단순하진 않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AMI 구축사업은 중단됐다. 3년 만에 사업이 재개됐지만, 각종 잡음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AMI 보급사업 추진 10년, AMI 보급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들을 짚어봤다.

♦기술적 관점-자체기술력에 따른 시행착오와 업계 분쟁
AMI 보급사업은 통신, 네트워크, 보안, 서비스, 유지관리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 이로 인해 해외 전력회사의 경우 통합적인 시스템 운영을 외부 솔루션 공급자에게 일임하는 턴키방식이 추진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해외에서 턴키방식을 하는 이유는 전력회사가 전기공급과 판매서비스에는 강점이 있지만, 대규모 통신망 구축, 실시간 데이터수집 및 분석 같은 디지털 기반 서비스에는 강점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전은 2250만호 AMI 보급이라는 대규모 사업임에도 공공기관 특성상 일괄수주방식이 아닌 자체기술력으로 사업을 추진해 여러 기술적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 결과 AMI의 보안 취약성 문제로 몇 년간 사업이 중단됐다. 또 사업 초기 도입한 한국형 전력선 통신(KS-PLC; Power Line Communication, 가공구간)의 지중(땅속)구간 통신장애 문제로 2014년, 2015년 연이어 사업이 연기됐다. 그동안 여러 유·무선 통신방식을 검증했지만, 한전이 목표한 지중구간 통신 성공률 95%를 넘지 못했다. 지난해 한전이 실증테스트한 IoT PLC가 통신 성공률 99%를 기록하면서 지중구간 통신방식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IoT PLC 업계 관계자는 “표준화 작업을 통해 IoT PLC의 사용기반이 마련되면 한전의 AMI 보급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IoT PLC 기술의 단체표준 제정은 KS-PLC 기술과 마찰을 빚고 있어 한전의 향후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한전이 지중구간에서 활용되는 HPGP(Homeplus Green Phy, 지중구간) PLC와 IoT PLC의 성능 비교도 고려하고 있어 업계 내에서는 AMI 보급사업 지연의 장기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보안계기 개발과 기술 검증 그리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사업이 지연된 부분이 있지만, 올해 200만호 이상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제도적 관점-아파트 AMI 보급의 불확실성
현재 한전이 추진하는 2250만호 AMI 보급사업에 (고압)아파트는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 아파트의 계량기 소유권은 주택법상 입주민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한전이 AMI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입주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런 제도적 문제로 AMI 보급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파트 주민의 40%는 세입자인데 이럴 경우, 세입자와 입주자 동의를 각각 받아야 해 행정절차가 굉장히 어렵다”며 “한전의 2250만호 보급사업에서 민수용 AMI가 10만호 정도의 규모로 추진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AMI가 구축되지 않은 구형 아파트의 경우 세대별 계약 전환을 통해서 설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이마저도 입주민 동의는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아파트 AMI 보급이 중요한 이유는 이에 따른 계시별 요금제를 적용하기 위함이다. 일부 세대에만 계시별 요금제를 적용하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어 아파트 AMI 보급에 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전이 아파트의 계량기 교체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한전의 예산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
다만 이 같은 AMI 보급 공백을 한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아파트 계량기가 개인소유인 만큼 사실상 법적으로 한전은 아파트 계량기 교체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재 아파트 AMI를 누가 보급하고 확장할지 큰 그림이 없는 데다 설령 한전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해도 제도 정비 없이는 AMI를 아파트에 설치하기도 전에 동의문제에 막힐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사업적 관점-낮은 경제성과 전기요금인상 문제
한전 AMI의 낮은 경제성도 사업 지체의 요인이다. 요금제 기반 수요 관리는 한전 AMI 사업의 대표적인 편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AMI가 도입된 지 10년이 됐지만, 아직 계시별 요금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AMI 보급사업은 전력회사가 주체이므로 AMI를 통해 전력회사의 제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전의 재정 상황에 따라 AMI 사업 계획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기, 에너지업계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업계 한 전문가는 “해외 특히 독일의 경우 에너지전환의 성공사례로 꼽히는데 전기요금 인상이 많이 됐다. 정부 정책이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어 우리도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독일의 경우 AMI 사업을 진행하면서 에너지전환을 위한 제도를 만든 이후 단계적 보급을 추진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전이 AMI 사업을 추진하면서 단가를 낮춰서 하겠다는 극단적인 경제 논리 상황으로 가지 않게끔 정책적 안정성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요금인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만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요금인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물가상승률과 전기요금인상률 비교 (2002년~2017년)

♦AMI 보급 공백으로 리콜·고장·담합 등 업계 잡음도
낮은 경제성으로 AMI 보급사업에 공백이 생기면서 업계 지형도 상당 부분 변했다. 한전의 대규모 AMI 보급사업에 대한 기대와 타 업종(개폐기, 변압기 등)의 열악한 시장 환경으로 계량기 사업에 진입하는 신규 업체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전의 적자상태로 한동안 계량기 입찰 시장이 문을 닫은 데다 입찰 형태도 최저가 가격경쟁과 총가 계약 등으로 진행돼 시장 건전성에도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전력량계 업계 한 관계자는 “심지어 입찰이 없던 해에도 계량기 업체가 늘었다”며 “AE-Type의 경우 업체 수가 2017년 20여개에서 2년 만에 40개가 넘어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부터 올 초까지는 한전의 고압고객용 연간 단가 입찰이 시행되지 않았다. 업체가 늘어난다는 것은 출혈 경쟁이 심하다는 의미다. 업계에 따르면 몇 년 사이 AE-Type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G-Type은 절반 수준조차 미치지 못하는 상황까지 내려갔다. 이는 연쇄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AMI 계량기 64만여 대가 리콜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전의 권역별 AMI 고장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5년간 AMI 고장처리 건수는 29만8139건에 달했다. AMI 계량기 업체들이 출혈 경쟁에 따른 수익 보전을 위해 저품질의 계량기를 납품했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 담합 의혹도 마찬가지다. 불과 2년 사이에 27만원하던 데이터집중장치(DCU) 단가가 61만원으로 3배나 올라 업체간 담합 의혹과 한전의 부실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이에 한전 관계자는 최저가 가격경쟁에 따른 낙찰가 하락으로 AMI 장비의 품질 우려를 언급하며 성능보강 차원에서 단가인상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관리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최저가 입찰에 대한 단면은 시인한 셈이다. AMI 보급사업 공백으로 파생된 문제들이 결국 AMI 보급지연의 악순환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강수진 기자 기사 더보기

sjkang17@ele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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