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산업 혁신에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될 금속. 원소번호 29번 구리(銅)다.

인류가 구리를 사용한 지는 무려 1만년이 넘지만 생산이 본격화된 것은 1900년 이후다. 구리는 전성과 연성이 좋고, 무르기는 하지만 다른 원소를 첨가하면 단단해진다. 고대 문명 발달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구리는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전선이다. 구리 사용량의 약 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케이블의 가장 완벽한 도체로 평가받고 있다.

구리는 항균 작용이 있으며 인체 독성은 거의 없다. 고등식물과 동물에게는 필수 영양소이기도 하다. 버릴 게 별로 없는 것도 장점이다. 폐 구리는 새 것의 약 90%에 해당하는 가치를 갖고 있다.

○…구리의 별칭은 닥터 코퍼(Dr.Copper)다. 금속에 ‘박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위상을 말해준다. 경기 선행 지표로 매우 유효한 덕분이다. 거의 모든 산업에 두루 쓰이기 때문에 구리 수요가 늘면 경기 회복 내지 활황을, 반대의 경우 침체 및 불황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 경고로 받아들인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만 보더라도 그렇다.

런던금속거래소(LME) 현물가격 기준으로 구리 값은 지난 1월 22일 t당 6103.5달러로 고점을 찍은 후 완만하게 하락했다. 4월 21일 현재 4994.5달러다. 3개월 새 약 20% 떨어진 셈이다.

특히 지난 3월 23일, 4617.5달러로 2016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갱신했다.

구리 값이 떨어지면 가장 직격탄을 맞는 업종은 원가 포션이 절대적인 전선이다. 전선 제조업체나 유통업체 입장에서 구리 가격 하락은 유리할 게 없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에 어느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하락을 반복하면 발주자도 주문을 미루기 일쑤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선 수요가 매우 위축된 현 시점에서 구리 값 하락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유통업체도 막대한 재고평가손실이 불가피하다.

투기(speculation)에 대한 유혹이 전반적으로 커지는 것도 문제다.

납품 계약에 기반한 전기동 구입은 위험 분산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공급 계약 없이 구리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우엔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

과거에도 일종의 투기성 전기동 구매로 낭패를 봤던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나마 비철금속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제조업 재가동에 들어서면서 구리 수요가 살아나고 중장기적으로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다만 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도 “주가 바닥은 모른다”고 했듯이 구리 가격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닐지 모른다.

국제유가가 돈을 얹어서 팔아야 하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다. 기업들은 코로나19 극복뿐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한 전략을 정교하게 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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