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역사의 물길이 또 한번 난폭하게 굽이치고 있다. 코로나19는 인류가 공고하게 구축했다고 자부하여 왔던 세계화의 제방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 물길은 이미 전세계 석유산업과 가스산업을 일순간에 휩쓸어버렸다. 이제 그 여파가 우리나라의 산업을 향하고 있으며, 전력산업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백신이나 치료제가 신속히 개발되지 못한다면 코로나19 사태는 1920년대 세계대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한 케인지언 정책에 의해서도 전세계 총수요의 급감을 반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국제유가는 머지않아 국내 전력시장에서 석탄발전의 변동비 단가와 LNG발전의 변동비 단가를 역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국내 석탄발전소의 좌초자산화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장래에 시장의 수급조절기능에 의하여 LNG와 석탄의 가격이 조정된다면 해소될 문제이지만, 석탄발전이 저원가 발전원이라는 전제 하에 설계된 현행 전력거래가격제도에 메스를 드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력거래소로서는 현재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전력시장 재설계의 기본방향이 확정되기도 전에 발전자회사에게 적용되는 정산조정계수제도를 재검토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간 초과이윤을 모조리 회수당해온 발전자회사들에게는 한전에 대해 손실 보전을 요구할 ‘재무적 균형’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가격역전이 상당기간 동안 지속된다면, 신규 민간석탄발전소에 대해 적용이 예정되어 있는 정산조정계수제도를 폐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고원가발전기로 전락한 석탄발전소의 전력거래가격을 억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가격역전이 재빨리 해소된다면, 그때는 전력당국이 어떤 명분으로 정산조정계수를 부활시키려 할 것인지 궁금하다. 여하튼 정산조정계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그때 해당 책임자는 무능하게도 시장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석탄발전소의 초과이윤을 억제하지 못해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초래한 책임을 떠안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환경급전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기저전원 전력시장과 피크전원 전력시장을 분리하는 방안 역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분리된 시장 방안은 가격역전 상황에서는 ‘반환경’ 석탄발전의 높은 변동비를 보전해 줌으로써 석탄발전소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힘센 환경단체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장원리에서 벗어난 제도를 무리하게 전력시장구조에 도입하는 경우 어떻게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전력시장의 구조를 왜곡시킨 업보인 것이다. 좋은 의도로 만든 규제가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를 야기하는 규제의 역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듯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시장원리에서 벗어난 정책은 전력시장이 아니라 법률을 통해 구현하면 된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넘어 무려 20년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 우리 전력시장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제도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고려한다면, 전력시장 재설계 방향은 시장원리를 존중하고 계약시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량을 줄이고자 한다면, 국민의 공감대를 얻은 다음 법률을 만들어 정당한 보상을 하고 석탄발전소를 폐지하거나 석탄발전량을 감축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지금처럼 가격역전이 지속된다면 보상의 규모도 줄어들 것이다.

각국 정부가 보여준 코로나19 사태 대응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보를 진실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과 방역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전력시장 재설계 작업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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