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아닌 합의·미합의 구분에 미합의 사항이 더 많아
“전문가들 의견이 갈린 자료를 공론화 기초자료로 사용할 수 없어”
출범 당시 34명이던 재검토위 위원, 현재 27명…‘반쪽 공론화’ 재연되나
정책결정 절차·과정 등 방향성에서는 공감대 형성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전문가 의견수렴 결과 공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토론회로 개최됐다.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전문가 의견수렴 결과 공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토론회로 개최됐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25일 전문가 검토그룹이 논의한 결과물을 놓고 토론의 장을 마련했지만 ‘절반의 성공’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토론회 패널들은 전문가들이 논의한 결과물이 합의 사항과 미합의 사항으로 구분됐고 심지어 미합의 사항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는 ‘불합격’으로 평가했으나 앞으로의 의사결정 절차·방식 등 방향성을 제시한 데 대해서는 만족을 표현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해당 토론회는 온라인 토론회로 진행됐으며 일부 패널은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토론회에 참가했다.

재검토위는 이날 토론회를 위해 지난 19일부터 재검토위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가 검토그룹 논의 결과를 공개하고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접수했다.

전문가 논의는 기술·정책 분야 두 그룹으로 구성돼 기술 분야에서는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및 포화 전망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 수준 ▲영구처분, 중간저장, 임시저장 관련 주요 고려사항 등 3가지 의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정책 분야에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칙 ▲사용후핵연료 정책 결정체계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관리시설지역 지원원칙 및 방식 등 4가지 의제를 놓고 논의했다.

그 결과 7가지 의제에서 총 9개의 합의 사항과 12개의 미합의 사항이 도출됐으며 재검토위는 “이번 보고서가 향후 의견수렴 과정에서 더 넓은 범위의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논의를 유도하는 출발점으로 의의를 지닌다”고 자평했다.

전문가 그룹은 크게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과 그 전 단계의 ‘중간저장시설’ 필요 ▲미래세대를 위한 ‘의사결정과정의 가역성’과 ‘사용후핵연료 회수가능성’ 개념 반영 ▲‘심층처분방식’ 타당성 연구와 기술개발 착수, 대안적 영구처분방식 연구 병행 필요 ▲의사결정 과정에 국민·지역주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반영 ▲‘부지선정위원회’ 신설과 4가지 부지선정원칙 적용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유치지역에 대한 3가지 지원원칙으로 등에 이견 없이 합의했다.

그러나 기술개발 추진과 정책결정 과정의 연동 여부, 심층처분기술의 안전성과 실현 가능성, 영구처분시설 부지선정 기간,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부지, 임시저장시설 추가 확충에 대한 전국 공론화 필요성, 사용후핵연료 정책 결정체계, 관리시설 부지선정과정에서 수용성과 안전성의 우선순위 등에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전문가끼리 논의했으나 12개 미합의 사항…반복되는 ‘반쪽 공론화’도 문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논의 결과가 합의 사항, 미합의 사항으로 구분된 데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정주용 한국교통대학교 교수는 “전문가들끼리도 합의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론화 자료로 사용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며 “공론화 과정에서 국민은 이 자료를 통해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종순 조선대학교 교수도 “사안을 합의·미합의로 나누는 것은 전문가 검토그룹 보고서로 적절하지 않다”며 “다음 논의를 위한 근거자료인 이 보고서에서 합의·미합의로 나눈 것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다수·소수의견이 아닌 대등한 의견이 있었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론을 거치며 합의 직전까지 이르렀던 쟁점들도 시간이 부족해 미합의 사항으로 남았지만 보고서에 이런 내용까지 반영되진 않았다.

차후에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공론화 절차에 돌입했을 때 거의 합의에 도달했던 사안을 다시금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 검토그룹 중 사퇴자가 많았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혔다.

최초 34명으로 시작한 재검토위는 출범 직후 3명이 사퇴, 그중 2명만 보충한 뒤 33명으로 운영됐다.

그마저도 지난 1월에 5명이 사퇴하고 지난 4일에는 1명이 더 사퇴하는 등 현재 남아 있는 인원은 27명에 불과하다.

정 교수는 “사퇴한 분들이 어떤 의미에서 사퇴했는지 알 수 없지만 돌아와서 어쨌든 합의안을 국민에게 내보여야 한다”며 “이런 상태로 보고서 내놓고 이것을 공론화 자료로 활용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정화 재검토위원회 위원장 역시 “2016년 당시 위원회도 ‘반쪽 공론화’를 지적받았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위원장으로서 힘들다”며 “학자의 소신을 담아 시민사회계에서도 공론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 건설 등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의 경우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 등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과 별도의 트랙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 교수는 “맥스터 증설이 재검토위 이슈로 들어와 있어 재검토위가 일정을 촉박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하는 중장기적인 이슈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연민 울산대학교 교수는 “월성원전은 국내 전체 발전설비용량에서 1.76%가량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과다한 사용후핵연료가 나온다”며 “원전업계에서 결단을 내려 월성원전을 닫고 경수로에 치중하는 게 낫지 않나”고 제안했다.

월성원전의 포화 시점 재검토에 착수한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는 다음달 중순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전문가 검토그룹 회의와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간저장시설이 필요하며 미래 기술개발에 따른 가능성을 포함한 대안이 담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것과 국내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 수준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 등 건설적인 논의도 이뤄졌다.

◆정책 분야에서는 상당 부분 공감대 형성…키워드는 국민참여·미래세대

전문가 검토그룹에서 ‘과학의 영역’인 기술 분야보다 ‘논쟁의 영역’인 정책 분야에서 오히려 다수의 합의점이 도출됐다.

전문가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 국민과 지역주민의 직접적인 참여 보장 ▲미래세대를 위한 지원방침 설정 등에 이견 없이 합의했다.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이 설치되는 지역에는 단발성·현금성 지원이 아닌 해당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미래세대를 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일치된 의견이 나왔다.

사용후핵연료 정책 결정체계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문가 검토그룹이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25일 토론회에 참가한 패널들은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조직에 대한 법적 근거를 확보함으로써 책임과 권한을 가진 조직을 중심으로 장기간 일관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달 경북대학교 교수는 “책임과 권한을 갖고 일관성 있게 주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조직체계가 필요하다”며 “그리고 법제화도 돼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는 게 다수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박수정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최근 원전해체 논의가 포함돼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맞물려 있는데 외국에는 원전안전청이나 원전해체청을 설치한 사례가 많다”며 “기존의 조직보다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집행력을 갖고 책임을 지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간저장·영구처분시설 부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과 지질 안전성의 우선순위는 ‘뜨거운 감자’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수용성과 안전성 모두 고려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두 가치를 모두 확보하지 못한다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정부가 차선책으로 안전성을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재검토위는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과 이날 토론회에서 추가된 의견을 취합해 다음달 1일 제23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재검토위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날 토론회를 통해 재검토 의견수렴의 첫 관문인 전문가 의견수렴이 마무리됐다”며 “본격적인 국민·주민 의견수렴 절차에 조속히 착수해 의견수렴이 적기에 완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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