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연구위원 방대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연구위원 방대규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담은 ‘축적의 시간’에서 이정동 교수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은 창조적 개념설계의 역량이 없는 것”이라며 “다양한 실패의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도 혁신성장방안으로 실패에 대한 용납, 비용경쟁력, 인재육성 등 3가지를 제언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성실한 노력 끝에 실패한 것이라면 그 실패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산업부 에너지R&D의 성공률은 81%로, 19%는 실패였다. 우리는 이 19%의 실패 경험을 잘 축적해서 제대로 공유하고 있을까? 국내외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처럼 실패를 끌어안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여전히 현장에서는 실패 허용이 어렵다. 사고가 나거나 실패를 하는 경우 예산 낭비로 몰아세우고, 단기적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해 줄 가스발전의 국산화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국내 기술수준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두산중공업은 개발 후 경쟁력을 고려해서 도전적인 250MW급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기술도입이 취소되면서 중단 위험도 있었고, 독과점 대기업에게 정부 R&D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20여 개 대학, 연구소, 기업 등이 협력해 세계 5번째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CO2와 미세먼지의 주원인인 석탄발전소에 차세대 기술인 초초임계발전(USC)을 도입하면 발전효율을 최대 5%p 개선된 44%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 현재 석탄화력발전소 20기에 적용하면 CO2를 연간 850만t을 감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0년 이상의 기술개발을 거쳐 2016년 한전과 중부발전, 두산중공업이 세계 3번째로 1000MW의 톱클래스 USC를 개발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를 받기도 했고, 날개부분의 손상을 1년 넘게 복구할 때는 예산 낭비 등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R&D란 이렇게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값진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2019년에 시작한 도전적 R&D인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는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지원하겠다”고 했다. 장시간의 노력과 더불어 실패를 통해 혁신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2017년 12월에 발생한 지열발전소의 5.4 포항지진 촉발과 2019년 5월의 강릉 수소폭발 사고는 현재 검찰의 수사 중에 있지만 도전적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R&D를 추진함에 있어 사회 안전 대책이 미비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2020년부터 국가 R&D에서 안전대책이 강화된다. 모든 과제는 자체안전점검이 의무화되고 지정된 안전과제는 연구실 단위 안전계획 이외에 기술 특성에 맞는 과제단위의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가스안전공사 등 전문기관에 연 1회 이상 의무정기점검을 받게 하고 안전성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면 중단될 수도 있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은 안전PD를 초빙해 수소·ESS·가스·전기 등의 안전종합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2020년 산업부 에너지 R&D는 ESS 화재방지와 수소안전, 포항지진 모니터링, 원전해체 등 안전기술개발에 약 556억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이는 총 예산(9613억원)의 6%수준으로 향후 추락사고, 지하매설관 등의 기술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앞으로 국가 R&D에서의 실패 경험을 축적하고 제대로 공유해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를 위한 자산이 될 수 있는 장치로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응원받는 역동적 R&D 문화가 조성되고 나아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연구위원 방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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