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화재 방지효과는 인정, 국내서는 아직 성능·현장적용 ‘물음표’
업계서는 “법제화 시그널로 많은 기업 개발 유도해야” 주장
소극적인 관계당국도 의지 갖고 구심점 만들어 논의 시작해야

건물에서 발생한 전기화재 사고 현장(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제공:연합뉴스
건물에서 발생한 전기화재 사고 현장(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제공:연합뉴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 지루한 논쟁과 유사한 문제가 아크차단기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크차단기 제조업계는 전기화재 감소와 시장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아크차단기 설치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관계당국은 법제화에 앞서 시장 활성화가 우선이라며 다소 소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크차단기는 스위치의 온·오프와 같은 정상적인 조작에서 발생하는 아크에는 동작하지 않고, 절연열화나 압착손상, 층간단락 등으로 아크(불꽃방전, 전선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파크현상)가 발생한 경우에만 전원을 차단하는 보호 장치다.

매년 일어나는 전기화재의 70~80% 이상이 아크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만큼 화재예방을 위해서는 아크차단기 도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방선배 전기안전공사 전기안전연구원 센터장은 “전기화재 예방과 관련해 아크차단기만큼 우수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미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제품을 사용했고, 유럽에서도 개발돼 보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능 검증할 시험기준도 없고, 비싼 가격도 보급에 걸림돌

국내에서 아크차단기 도입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이 지루한 논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이해당사자 간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아크차단기를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기업은 아콘텍과 아이앤씨테크놀로지, 유명 배선기구업체 A사 등 3곳 남짓이며, 아크검출장치 등을 준비 중인 곳도 2개사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제품을 확보한 기업은 있지만 성능에 대한 검증 문제와 비싼 가격으로 인해 아크차단기 보급은 요원한 상태다.

정부는 2002년 단체표준인 FIS 015 아크경보기 인정기준을, 2014년에 아크차단기 관련표준인 KS C IEC62606을 제정했고, 문화재청에서도 목조문화재 보호법과 소방시설 가이드라인에 아크차단기 설치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는 등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법적·제도적 미비점이 여전하다.

그 결과 별도의 인증기준조차 없어 제품을 개발해도 국내에서는 시험인증을 받을 곳이 없는 실정이다.

아크차단기 시험인증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는 “우리 같은 경우에는 누전차단기로 시험을 받고 그 시험인증서에 ‘누전차단기(아크차단 겸용)’라고 쓰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싼 가격 또한 걸림돌이다.

일반 누전차단기 가격이 개당 2000~3000원대인 상황에서 개당 7만원대 이상을 호가하는 아크차단기를 수용가나 전기공사업체가 자발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영세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문제로 인해 시장활성화를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잠재력만 믿고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아크차단기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아크차단기를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요령의 안전인증대상에 포함하고, 이를 근거로 시험인증기관을 정해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아크차단기를 시장에 내놔야 한다”면서 “정부도 미국, 유럽처럼 건축물 설치기준에 아크차단기 부착을 의무화하거나 전기설비기술기준에 명시해 필요한 장소에는 아크차단기를 설치토록 강제해야 전기화재 예방과 시장활성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크차단기 도입 논의할 구심점 만들어야

그러나 이 같은 업계의 주장에 대해 관계당국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을 비롯해 전기협회, 전기안전공사, 전기연구원, 시험인증기관 등 아크차단기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동향을 살펴보면 특별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관계당국이 법제화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크차단기에 대한 성능보증 부분이다.

화재예방을 위해 아크차단기 설치를 법제화했다가 잦은 오동작으로 인해 정전이 이어지면 더 큰 유무형의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는 “그동안 작은 중소기업들이 아크차단기를 만들다보니 약간의 오동작 내지 현장적용 부문에서 불안요소가 없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아크차단기 보급을 토론하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방 센터장은 “아크차단기는 저압 쪽에서는 중요한 보호장치임에 틀림없다. 다만 성능에 대한 찬반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런 문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함께 논의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면서 “전기안전공사, 전기협회, 시험인증기관, 전기연구원 등이 구심점이 돼서 실무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도 이 같은 구심점에 힘을 실어주고, 예산 지원을 통해 전기화재 예방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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