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교육팀을 이끄는 신 팀장, 임원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그의 업무 성과는 자타가 공인한다. 그는 최근 모바일 기반 학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인사팀의 송 사원을 영입했다. 송 사원은 교육팀에 발령이 난 후 매일 야근이다.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곤한 날이 계속됐다. 송 사원은 신 팀장과 점심을 먹으면서 휴가를 내려고 얘기하려던 참이었다. 신 팀장이 송 사원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내가 신입일 때는 한 달 내내 연수원에서 숙식하면서 집에 가지 못한 적도 많아.” 신 팀장이 그가 신입일 때의 무용담을 늘어놓자 송 사원은 휴가의 ‘휴’자도 못 꺼냈다.

IT 회사에서 급여·총무 업무를 담당하는 이 사원, 그는 급여 지급일을 제외하고 야근하는 날이 거의 없다. 박 팀장이 이 사원에게 묻는다. “저녁에 약속 있니? 회식 어때?” 이 사원이 대답한다. “친구랑 약속이 있는데요.” 박 팀장은 말을 잇지 않는다. 이 사원은 일 처리가 빠르고 똑똑하다. 그는 “내 일을 다 끝냈는데 눈치 보고 남아있을 필요 있나?”라고 생각한다. 지난달부터는 퇴근 후 집 앞 문화센터에서 외국어 강좌를 듣고 있다. 그는 자기개발에도 관심이 많고, 시간을 투자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X세대인 신 팀장은 전형적인 선배 세대다. 자기 일에 충실하면 몸값도 오르고 그만큼 보상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당신들이 사원일 때에 비하면 요즘 젊은 직원들은 나약하고 약삭빠르게 보인다. 야근을 꺼리는 모습을 보며 업무에 대한 근성과 열의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회사나 업무보다 제 삶만 챙기려 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인 이 사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일보다는 삶, 조직보다는 개인에 방점을 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에게 충성의 대상은 회사나 일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미래이다. 회사에 헌신하다간 헌신짝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조직 내 새로운 세대가 유입되면서 조직문화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한 신문사의 조사에 따르면 과거보다 ‘야근이 줄고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29.4%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바람직한 야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개인 차원에서 세 가지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싶다. 첫째,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는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냉정한 평가와 상응하는 보상도 각오해야 한다. 둘째, 스스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주어진 업무시간에 집중해야 하고, 야근을 조장하는 비효율적인 낭비 요인을 없애야 한다. 인터넷 쇼핑, 잡담, 과도한 티타임 등 업무 외 비생산적인 딴짓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 셋째,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협업 툴, 생산성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업무를 해야 한다. 후배 세대는 선배 세대가 만들어놓은 일하는 방식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어야 하고, 선배 세대는 새로운 시도를 독려하는 창의적 직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아울러 조직 차원의 과제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구성원의 자유와 재량권을 높여야 한다. 직원들이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직급 간소화, 호칭 통일, 영어 이름 사용 등이 일반적인 예다. 둘째, 탄력적으로 일하도록 돕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생산성을 가로막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탄력근무제, 자율좌석제 등을 통해 부서, 직원들이 업무 상황에 맞게 출퇴근 시간과 업무 공간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도전을 격려하고 보상해야 한다. 실패와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에 대해 적절히 보상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2016년에 이어 2018년에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조사했다. 2016년 조사 때보다 야근, 보고, 업무 지시, 여성 근로 항목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야근’이다. 우리는 아직 ‘야근 공화국’, ‘야근 왕국’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성실이 최고의 미덕이었던 산업화시대에는 야근이 성공의 디딤돌이었지만, 창의성과 협업이 요구되는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습관적인 야근이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더는 야근이 능사가 아니다. 얼마나 생산적으로 일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야근을 줄이고 업무시간을 줄이는 것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출발일 뿐이다. 리더라면 관성적으로 해온 불필요한 야근이 없는지 성찰하고, 후배라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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