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제’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
9차 전기본에서 경제성·환경성·에너지 수급 등 해결해야
상반기 내 수립도 불투명...묘수 나올까

경남 고성군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 (제공:연합뉴스)
경남 고성군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 (제공:연합뉴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이 해를 넘겼지만 여전히 쌓여있는 ‘난제’가 많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9차 전기본의 계획기간이 2020~2034년으로 밀리면서 지금까지 쌓아놓은 데이터도 조정이 불가피해져 상반기 내 수립도 불투명해졌다.

전기본 수립에 관여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2033년까지 세워놓은 계획에 2034년 데이터를 붙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라며 “전망치를 반영했던 2019년 데이터를 모두 실제 수치로 바꿔 다시 예측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2년 8월 첫선을 보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2년 단위로 수립·시행돼야 한다.

이에 따라 5차 전기본이 발표된 2010년 12월까지 매 짝수 해 12월에 발표됐지만 2012년 12월에 발표됐어야 할 6차 전기본이 해를 넘겨 이듬해 2월에 발표됐다.

7차, 8차 전기본이 2015년 7월과 2017년 12월에 각각 확정된 점을 고려하면 전기본 수립이 이토록 늦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안정적인 전력수급과 에너지전환 기본 전제...경제성·환경성·에너지수급 역시 신경 써야

정부가 9차 전기본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전기본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와 여당이 지난 2017년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경제성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전력공사가 조(兆) 단위의 적자를 기록한 원인으로 발전원가 상승에 따른 전력구입비 증가가 지목되고 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여전히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회의적이다.

국제 연료가격 인상이 발전원가 상승을 거쳐 한전의 적자 규모를 키우고 있음에도 전기요금 인상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9차 전기본은 정부 정책에 따라 원자력·석탄 등 기저발전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신재생 등 첨두부하조절용 발전원을 늘리면서 전기요금 인상압박을 피해야 하는 첫 번째 난제를 떠안은 셈이다.

이어 지난 2018년에는 발전 분야에 할당된 온실가스 감축분이 3410만t 증가했다.

정부가 올해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확정해야 하는 가운데 9차 전기본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로드맵 수정안’을 통해 할당된 추가 감축분 3410만t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할 마지막 기회다.

전문가들은 1000만㎾ 이상 규모의 석탄발전을 LNG발전으로 대체해야 3410만t을 감축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결국 9차 전기본에서 10년 안에 석탄화력 20기를 전력수급 공백 없이 LNG로 대체하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 두 번째 난제를 마주했다.

NDC의 기준이 되는 2030년까지 ‘준공 후 30년’이 도래하는 석탄화력이 14기(700만㎾)에 불과해 정부는 나머지 300만㎾를 어디서 찾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민간발전사들이 “폐지하는 석탄발전소의 설비용량만큼의 LNG발전소 건설을 보장해주는 대체건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과감한 탈석탄 정책’을 공언하면서 LNG발전의 급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에너지 수급에 대한 걱정이 세 번째 난제로 부상했다.

게다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한 영구정지를 결정하며 탈원전 정책을 가속하고, 자유한국당은 4·15 총선을 위한 1호 공약으로 ‘탈원전 정책 폐기’를 내놓는 등 다시금 ‘탈원전 논쟁’이 가열되고 있어 정치적인 부담감 역시 이겨내야 한다.

이들 난제들은 하나만 놓고 봐도 충분한 시간과 논의가 필요한데 세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려다 보니 장고(長考)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력분야 한 전문가는 “9차 전기본 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담당자들이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9차 전기본이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하더라도 전력산업계가 이 계획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만큼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9차 전기본 수립이 해를 넘기자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정부 계획이 나오는 시기를 업계에서 결정할 수 없으니 그냥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계획이 빨리 나와야 그에 맞춘 사업계획으로 경영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9차 전기본이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포함돼 이 과정에서 최소 30일이 추가로 필요하다.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위해서는 소관 부처와 환경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전기본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는 처음이므로 협의체 단계에서 시간을 더 소비할 가능성도 있다.

세 가지 메가톤급 이슈를 담아야 하는 9차 전기본을 놓고 정부가 장고에 돌입한 가운데 장고 끝에 묘수가 나올지, 악수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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