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은 현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 중 하나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필두로, 2017년 제천 화재참사, 2018년 경북 포항 지진 등 재난 참사가 잇따르며 안전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018년 2월 첫 시행한 ‘재난안전제품 인증제도’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관계가 깊다. 이 제도는 국민안전과 밀접한 제품에 대해 국가가 품질을 인증해 주는 제도로, 안전 수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관련 업체의 기술개발과 판로 확대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된 인증 대상은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줄이고 신속한 대응을 돕는 재난안전제품이 폭넓게 포함된다.

국내 전력기자재 업계도 최근 수년 새 재난에 특화된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고 있다.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비한 기능이 구비된 제품부터 화재 발생위험을 낮추기 위한 접속불량·스파크·열화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제품들까지 품목을 불문하고 기술 적용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개발 이후의 현장 적용성이다. 이 같은 제품들은 전력설비 용량이 크거나, 다수 이용자가 사용하는 대규모수용가 등의 관급시장을 중심으로 우선 보급되는데 발주처에선 “의무구매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가격이 저렴한 기존 제품을 구매하기 일쑤다.

민수시장의 경우에는 문턱이 더 높다. 건설산업이 위축되며 가격경쟁이 심화되다보니 신기술이 도입돼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제품은 설비 목록에서 일차적으로 제외된다. 안전이 사회적인 관심사로 부상하며 관련 시장의 확대를 기대해 수억 원의 개발비와 수년의 시간을 투자한 업체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배경이다.

지난해 재난안전제품 인증을 받은 한 업체 관계자는 “‘국민안전’을 제고한다는 목표 하에 사활을 걸고 제품을 개발했는데 구매하겠다는 곳이 없다”며 “발주처 담당자들이 ‘관련 규정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을 보면 아직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인증 제품의 확대 보급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안부는 지난 1월 ‘2020년 상반기 재난안전제품 인증제품’ 접수를 공고하며 지자체·공공기관 등 수요기관을 대상으로 맞춤형 설명회를 개최하고 인증제품에 대한 수의계약 근거를 연내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무리 좋은 기술, 제품이라고 할지라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뿐이다. 특히 안전 관련 제품의 낮은 구매율은 관련 업계의 신제품 개발의지를 꺾고, 종국에는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다.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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