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IMF 당시 부사장 발탁되면서 금호전기에 투신
세계 5대 기업 꿈꿨지만 만성적자 허덕이다 결국 지분 매도
새 주인은 신주홀딩스, 금호전기 사업재편 불가피할 듯

‘빛을 근간으로 한 세계 5대 전기·전자회사’를 꿈꿨던 박명구 금호전기 회장의 도전은 결국 끝을 보지 못했다.

박명구 회장은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던 시점에 금호전기에 합류한 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으로 한 때‘번개표’의 부활을 이루기도 했지만 LED조명사업의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2일 박명구 금호전기 회장 외 3명은 금호전기 보통주 142만2023주를 신주홀딩스에 장외 매도했다.

박 회장(9.18%)을 포함해 형제인 박영구(3.90%), 박남구(0.65%), 박현옥(0.12%)씨의 지분 13.85%를 처분했다. 이로써 박 회장 일가는 금호전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박 회장은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친동생인 고 박동복 금호전기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1935년 설립된 금호전기는 1976년 당시 금호그룹이 지배주주로 등극하면서 경영권을 획득해 1978년 회사명을 ‘금호전기주식회사’로 변경했고, 1982년 당시 박 부회장의 아버지이자 금호그룹 부회장이었던 박동복 씨가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금호전기는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단행해 최고의 호황을 누리다가 1998년 갑자기 불어 닥친 외환위기와 글로벌 조명기업들의 국내 진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도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1981년 안정기 제조업체인 엘바(ELBA)를 설립했던 박 회장이 금호전기에 합류한 것은 1998년 6월이다. 금호전기 부사장에 전격 발탁된 것이다.

당시 외환위기(IMF) 사태로 한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금호전기의 매출도 반토막이 났고, 직원들 월급도 밀렸던 시절이다.

박 회장은 이에 눈물을 머금고 직원 400여명을 구조조정하고, 서울 마포 본사사옥 매각 등 돈 되는 것은 모두 팔았다. 또 미국계 투자회사에서 500억원을 차입, 냉음극형광램프(CCFL)를 비롯한 특수램프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액정표시장치(LCD)용 CCFL 사업은 전자산업의 부흥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두면서 2004년에는 2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기록, ‘번개표’의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조명의 새로운 광원으로 LED가 대두되면서 박 회장은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박 회장은 LED조명 시장의 본격 개화에 앞서 다른 글로벌 조명업체들처럼 금호전기(완제품)-루미마이크로(LED패키지)-더리즈(LED칩)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완성했다.

하지만 국내 LED조명 시장은 중국의 저가 제품들이 장악했고, 때마침 동반성장위원회가 LED조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중견기업이던 금호전기의 입지는 위축됐다. 또 LED조명이 중소기업 간 경쟁품목으로 지정돼 조달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금호전기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 결과 만성적자가 이어지면서 박 회장은 결국 금호에이치티와 루미마이크로 등 알짜 계열사를 하나씩 매각했고, 중국 법인까지도 정리했다.

또 이와는 별도로 LED를 이용한 두피모발케어기기를 개발,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퇴진을 선택했다.

금호전기는 지난 1월 23일 임시주총을 열고, 박명구 대표가 사임함에 따라 이홍민 신주홀딩스 대표를 새 대표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오너 대표이사 변경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한 금호전기는 앞으로 과감한 사업재편과 대폭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설립 85주년을 맞은 금호전기, 과거 ‘번개표’의 명성을 되찾고 조명업계의 맏형으로 다시 우뚝설 지, 아니면 힘없이 무너져 내린 수많은 글로벌 조명기업 중 하나로 전락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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