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 합의 서명식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협상팀 대표 류허 부총리가 참석했다. 의전에 맞지 않는 자리였다. 일반적으로 무역협정 체결은 장관급에서 이뤄진다. 중국에서 협상팀 대표인 류허 부총리가 나왔다면 미국에서도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참석해 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트럼프는 생색낼 수 있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굳이 무역대표부 대표를 놔두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서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협정에 서명하는 시간도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위한 결의안에 투표하는 시간과 겹쳤다. 일부러 그렇게 잡았을 것이다. 당연히 CNN의 경우 하원을 연결했다가 합의 서명식을 동시에 중계해야 했다. 상원의 탄핵 투표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자리를 놓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이 1단계 합의안에 공식 서명하면서 18개월간 이어졌던 무역전쟁은 일단 휴전으로 들어갔다. 트럼프는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합의문은 중국이 미국산 제품을 대규모로 구매하고 대신 미국은 애초 계획했던 대중 추가 관세 부과를 철회하는 동시에, 기존 관세 중 일부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는 게 골자다. 중국이 양보한 것은 맞다.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에, 환율에 대한 일부 합의까지 받아들였다. 중국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관세를 되돌리는 조항도 들어가 있다. 중국이 앞으로 2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구매할 품목도 자세하게 지정해놓았다. 중국은 공산품 700억달러와 농산물 300억달러를 포함해 향후 2년간 각 분야에서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은행과 보험과 같은 금융시장 일부도 개방한다. 월가가 기대하는 것은 아마 중국의 부실채권 시장에 진입할 기회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때에도 미국의 투자회사들은 부실채권 투자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도 잃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말 그대로 1단계다. 1단계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까지는 주요 이슈를 모두 담는 ‘빅딜’을 원한다고 했었다. 이번 합의는 ‘빅딜’이 아니다. 국영기업 보조금 문제 같은 쟁점은 미뤘다. 중국으로서는 다시 시간을 번 셈이다. 미국으로부터의 수입도 손해만 보는 장사는 아니다. 중국 환구시보에 따르면 예를 들어 중국의 대두 소비량은 1억톤이 넘지만 중국내 생산량은 1600만톤에 불과하다. 어차피 수입해야 하는 품목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칼럼의 제목은 트럼프는 협상을 얻었고 중국은 승리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떤 약속도 중국이 이행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물론 중국이 약속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미국은 언제든 다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럼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힘들고 지루한 협상도 재개될 것이다.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하고 중국은 아직 미국과 맞서기에는 약하다. 중국의 기술 굴기도 어느 정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당장 올해 중국 경제는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6%대의 성장 목표는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각각 5.8%, 5.7%로 전망하고 있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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