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천연가스산업 안팎의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LNG를 직수입하려는 발전사와 산업체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이에 대응하여 ‘개별요금제’라는 대항마를 출격시켰다. 더욱이,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 상당 기간 전력믹스에서 LNG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견된다.

설비 측면에서도, 가스공사가 제5기지 건설에 돌입했고 민간 LNG터미널 사업자 역시 지속적으로 저장용량을 확장하거나 터미널을 신규 건설하려 하고 있는 등 상당한 설비 확충이 이뤄질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LNG 가격산식의 다양화와 구매계약 조건의 유연화가 확산되고 있고, 공급처도 기존 중동국가를 넘어 미국과 호주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으며, 현물시장(spot market)의 비중이 급증하는 등 LNG의 상품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 국내 에너지산업에 천연가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과장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국내 천연가스산업의 발전과 성장 전망의 뒷면에는 수급관리, 에너지안보, 글로벌 LNG가격 변동성 측면의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LNG 직수입과 개별요금제 모두 기본적으로는 대규모 수요자의 개별적 수급관리를 전제로 한다.

이제 천연가스 구매방식이 크게 변화한 상황에서 특히 국가기간산업인 전력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발전사들의 장기적 수급관리가 긴요하다. 그러나, 급전순위를 둘러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CBP 전력시장체제 하에서 발전사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장기수요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수급관리를 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급전지시가 내리기를 바라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급전순위가 언제 더 낮은 가격의 LNG를 도입하는 다른 발전기에 밀려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 대정전사태를 초래한 원인의 데자뷔로까지 느껴진다.

에너지안보환경도 결코 녹록하지 않다. 현재 미국과 이란의 갈등 고조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나아가 중동지역 전체의 정세 악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미중패권전쟁의 전개양상에 따라서는 우리나라가 에너지수입을 위해 의존하고 있는 아시아지역 해상수송로의 안정성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천연가스 수요의 사실상 전부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글로벌 LNG시장의 가격변동성에 매우 취약하다. 셰일가스의 축복이 언제까지나 글로벌 LNG시장에 충만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글로벌 LNG시장이 항상 공급자 우위 시장이었던 것은 아닌 것처럼 항상 수요자 우위 시장으로 남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가스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은 가스산업과 그 배후의 전력산업의 유연성(flexibility)과 회복력(resilience)을 제고하는 구조적 접근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가스공사와 직수입자 간 거래 규제 등 칸막이를 낮춤으로써 가스산업 자체의 구조적 유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가스공사를 최후공급자(supplier of last resort)로 지정해 급변사태 발생 시 국내 수요자들에 대한 안정적 공급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원믹스를 결정함에 있어서 에너지안보문제를 시나리오별로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퇴출되는 기저발전기를 남김없이 즉시 해체하기보다는 재생에너지가 일정 수준 안착할 때까지 일부를 비상사태에 대비한 예비력으로 남겨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현물시장으로만 구성된 전력시장에 계약시장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발전사들이 자율적으로 장기 수요예측과 수급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안보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LNG 도입처를 다변화함은 물론, 무분별하고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해외가스개발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LNG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대응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가격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서의 조치들에 더하여 EU와 일본이 적극 공조하고 있듯이 LNG수출국에 유리한 시대착오적 계약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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