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유행하던 한 드라마에서는 전력 제어시스템을 공격할 목적으로 전력회사의 직원 집에 잠입하여, PC에 전력 제어시스템을 공격하는 스턱스넷과 같은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심어놓고, 해당 직원의 USB를 통해서 전력망을 장악하여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는 묘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정부 부처에서 이례적으로 드라마 시나리오의 허구성을 브리핑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전력 제어시스템 및 전력 자동화 시스템이 인터넷과 분리되어있는 폐쇄망이므로, 외부에서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하였으나, 실제로 인터넷망과 전력망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는 드라마 시나리오도 개연성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드라마는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1.0 프로토콜이 발표된 시점과 맞닿아있고, 발 빠른 최신기술이 드라마에 적확하게 적용된 예로서 아직까지 유효하다. 올해 9월에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자들이 IoT를 통한 전력망을 공격할 수 있는 해킹 시도를 물리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는 IoT 장치들의 일시적인 과부하를 거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전력공급의 실패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3천 메가와트의 전력을 일시적으로 소모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해킹의 결과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력 소모의 상한선(파워캡)을 설정하여 전력 송배전의 경로를 다변화함으로써 또한 제어될 수 있음을 논문에 게재하였다.

소위 인터넷으로 대표되고 있는 정보통신의 망(net)은 초 연결화(Hyper-connected)되어 모든 사물과 이어지는 IoT로 진화하고 있는 현재이다. 초기 인터넷만 하더라도 냉전 시대의 보수적인 방식으로 군사적인 정보를 자국 내에 분산 저장하는 개념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불과 수년 내에 이를 초월하여 각 국가의 지역 말단들을 연결하고 그 국가들을 연결하여 정보를 양방향으로 교류할 수 있는 거대한 전 지구적인 망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전력망(grid)의 지능화 개념을 프로토콜로 전 지구적인 스마트그리드와 에너지 인터넷으로서의 개념으로 정착하고 있는 과정이다.

최근 언론에서 종종 인용되고 있는 ‘한 아이의 유튜브와 메이저 방송사의 광고수입 비교’ 같은 기사로 언론계를 자조하는 데 쓰이기는 하지만, 언론의 영향력의 바로미터로 연결지어 생각되는 광고지수에서 보자면 주류 언론사의 영향력이 마이너한 개인 언론에 비해 더는 메이저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개인인 내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방송을 할 수 있다? 주체로서 모든 세계와 능동적으로 연결된다? 이는 양방향성 인터넷망의 패러다임을 체득한 새로운 세대의 물결이자 새로운 시대의 개방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떻게 보면 내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프로슈머(참여형 소비자)의 개념이 아래로부터 위로 퍼져나가 스마트그리드 산업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동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탄소 제로 배출 등으로 전 세계적인 에너지산업의 변화를 국민에게 캠페인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 퍼뜨려야 효율적이라고 믿던 과거 패러다임보다 효과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이어져야 사업의 성공이 장기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정보통신기술 발전지수는 2016년 현재 1위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밝혔다. 우리의 스마트그리드 발전에 근간이 되는 인프라는 현재 어떠한가? 스마트그리드가 인터넷망처럼 발달할 수 있음에도 한국이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 않음은 각종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보수적인 시각으로는 전력공급과 전기의 질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단방향 계통이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다. 국내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행여 서민과 기업에 부담이 갈 수 있다는 경제 논리에 힘입어 세계의 트렌드를 애써 눈 감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국민 전반의 목소리가 스마트그리드에 주목을 하고 있는 세계의 움직임에 비해 아직 그다지 높지 않은 이유 혹은 높게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범수 원광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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