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은 대의제라는 간접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대표자를 뽑아서 그들이 정책을 비롯한 의사결정을 하게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인구가 많고 영토가 넓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현대 사회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정책 결정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된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에게는 국민 세금으로 보좌관 비서관등을 통해 의정활동을 지원하게 한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제도 역시 완벽하지는 않았다. 성인 남자들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자와 노예들은 제외됐다. 그렇지만 이들도 교통, 통신이 좋지 않았고 생업에 바빴기 때문에 정책 결정에 참여한 것은 통상 10%가 되지 않았다.

대의제의 단점은 오래전부터 간파됐다.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선거할 때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대의원을 선거할 때뿐이며, 대의원이 일단 선출되면 영국인은 다시 노예로 돌아가 버린다”며 간접민주주의를 비판했다. 이런 대의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민소환제가 있으나 한국에서는 한 번도 시행되지 못했다.

선진국 스위스의 글라루스주와 아펜첼이너로덴주 등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직접 민주주의가 새롭게 한국에 나타났으니 일명 ‘공론화’다. 공론화 그 자체는 직접민주주의는 아니지만 공론화를 통해 도출된 결론에 기초해서 정책이 결정된다면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정치인들에게 화가 난 국민들은 공론화에 열광했다. 대의제의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해줄 것만 같았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들은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그 때문일까. 부산시는 BRT 존폐문제도 공론화로 결정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결정했다며 공론화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정책 결정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왜 공론화 위원들이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선출직 보다 우선하는지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원자력 분야는 공론화가 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문성 못지않게 이념이 작용하고 찬반이 극명할 뿐만 아니라 민심이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원자력 찬반 논쟁으로 이어져 전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또한 사용후핵연료와 관련 공론화는 지금 2번째 진행 중이다. 이름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서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 위원회)로 변경됐다. 다시 공론화를 하는 이유는 지난 정부 때 수립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국민, 원전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검토위원회 회의록을 봐도 별 내용이 없다. 6차 회의 이후 11차 회의 때까지 30%가 넘는 결석률을 보였으며 회의록도 부실했다 이에 대해 정정화 위원장은 위원들의 바쁜 일정 때문에 결석율이 높고 비공개 속기록이 따로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자는 속기록 정보공개 요청했다. 그러나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고 이의신청 중이다. 위원들은 12번 회의(10월말 기준)하면서 회의수당만 9400만원을 챙겼다. 무슨 내용이기에 속기록을 비공개 하는지 궁금하며 비공개가 과연 공론화 취지와 맞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또 공론화를 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대의제가 문제가 많아 직접 민주제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4년의 임기를 미국 하원처럼 2년으로 줄이는 것은 어떨까? 국회의원 임기는 개헌 사항이라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검토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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