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2차 세계대전사를 보면 무기를 들고 전투에 임한 군인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중에서도 숨어있는 영웅을 곧잘 발견하게 된다. 영화로 익히 알려진 앨런 튜링이 그러하다. 또한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애이브라함 왈드라고 하는 통계학자가 이에 해당한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 정부는 통계연구그룹(SRG)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맨해튼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기밀 프로젝트였다. 맨해튼이 핵무기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면 통계연구그룹이 개발하는 무기는 다름 아닌 폭발물이 아니라 방정식이었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수학과 통계학 방법론이 연구되는 장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통계연구그룹에 미 전투기의 안정성과 무장력을 동시에 높이라는 임무가 하달됐다. 무장력을 갖추자니 화기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기체를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기체를 가볍게 만들면 전투기 자체뿐만 아니라 파일럿의 안전도 위협받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제로 전투기는 태평양 전쟁 초에 미 해군의 콜세어 전투기와 붙으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빠른 회전력 덕분에 도그 파이트라 알려진 공중근접전에서 콜세어기를 손쉽게 격추시키는 공포의 전투기가 제로기였다. 하지만 미군은 격추된 제로기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이내 약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파일럿과 전투기의 안전을 무시하고 기체를 얇게 설계한 것이었다. 제로기의 약점을 밝혀낸 미군은 이후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투기의 안정성과 무장력은 상반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통계연구그룹에게 주어진 임무는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었다.

연구그룹은 전투에서 복귀한 여러 전투기마다 구멍이 뚫린 위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엔진 주위에서 발견된 탄흔의 숫자가 제일 작았으며 동체에서 발견된 탄흔의 숫자는 이보다 약 60% 더 많았다. 그래서 통계연구그룹의 동료들은 동체를 더 두껍게 설계할 것을 제시했지만, 애이브라함 왈드는 제일 탄흔피해가 작은 엔진 주위를 오히려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엔진에 총격 피해를 입은 전투기는 애초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추락하였기 때문에 표본분석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엔진보다는 동체에 집중적으로 총격을 입은 전투기는 우여곡절 끝에 귀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왈드의 제안은 전투기의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엔진 부위의 철갑을 보강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는 표본편향(sample bias)을 설명하는 훌륭한 일화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가 다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숫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초미세먼지 정책을 보면서 애이브라함 왈드의 동료처럼 표본편향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초미세먼지 정책은 저농도 수치나 평균적인 수치에 맞출 것이 아니라 초고농도의 수치관리에 역점을 둬야 한다. 봄철과 가을철에 유연탄 발전을 줄인다고 실질적으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들게 될까? 그 시기에는 이미 상당수 유연탄 발전이 하절기와 동절기에 대비해 예방정비를 하고 있는 때이다. 물론 유연탄 가동중지에 따른 미세먼지 농도의 감소가 없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한계적일 수 있다. 아울러, 초미세먼지 농도가 심할 때에 유연탄을 대체하는 발전원은 무엇일까? 현재 정책에서는 LNG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기가 정체되어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심한 시기에는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에 기댈 수는 없으며 원자력은 그 의존도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적인 LNG라고 할지라도 이 역시 미세먼지의 배출원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원자력 기저발전을 대체한다는 발상의 정책이 과연 초미세먼지 정책과 정합성을 갖는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하철 대기질의 획기적인 개선이나 재택근무에 대한 조치 없이 차량 2부제로 시민을 몰아붙인다면 국민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위협이 어떠할지도 고민을 해보았는지 궁금하다. 애이브라함 왈드가 한국의 초미세먼지 정책을 보면 뭐라 말할까? 표본편향을 고려한다면 유연탄과 원자력을 주적으로 삼은 정책으로는 실효를 볼 가능성은 낮을 거라고 진단하지 하지 않을까 싶다. 초미세먼지 정책을 동체에 갖다 대는 게 아니라 엔진부위에 갖다 대라고 주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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