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첫눈도 내렸고 이제 완전히 겨울이다.

한때 대한민국 온 국민을 가오나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캐릭터)로 만들었던 롱 패딩의 시절도 가고 올해는 숏 패딩과 일명 ‘뽀글이’로 불리는 양털재킷이 유행이라 한다. 두 종류 모두 한때 유행했던 것들이다.

2017년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시작된 롱 패딩의 열풍은 지난해까지 이어졌지만, 내가 롱 패딩을 산 것은 지난해 겨울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돈을 아끼겠다며 숏 패딩과 코트로 버티고 버티다 홈쇼핑 누나의 친절한 설명에 반해 덜컥 샀다.

유행을 역행하듯, 올겨울에도 롱 패딩을 입고 다니고 있지만, 아직 후회한 적 없다. 어차피 유행은 돌고 돌아 또다시 롱 패딩의 계절이 올 테니.

얼마 전 에너지하베스팅 특집을 준비하며 국가사업에도 유행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부에서 주최•주관하는 과학•전자 관련 세미나를 보면 AI, 로봇, 빅데이터,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주제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도나도 외치던 블록체인, 가상화폐는 어느새 쏙 들어갔다.

연말 보너스로 받은 100만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한 달 후 40만원으로 돌려받은 경험도 이젠 옛일이다. 이럴 유행이라면 좀 더 빨리 사라져줬으면 좋았을 텐데.

정부 과제가 유행을 따라간다는 점은 사라진 내 돈 60만원의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정부과제는 국가 발전을 전제로 미래를 위한 투자여야 하지만 어떤 기술을 선도하기보다 누가 보더라도 안전하고 무난한, 유행 같은 기술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과학이 유행 따라갈 일인가.

작은 센서, IoT기기 등에 활용되는 에너지하베스팅이 스마트 산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실무선에서 알고 있음에도 이를 개발하기 위한 투자나 지원을 외면하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개발하는 데 오래 걸리는 신기술의 경우 똑같은 과제가 연달아 채택될 수 없는 제도 또한 개발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과학기술 개발이 유행을 따라가는 게 죽을죄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낸 세금이라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쓰였으면 하는 소시민의 바람이다.

유행은 돌고 돌아야 한다. 과학, 넌 돌면 안 되고 롱 패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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