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참석도 하지 않는 회의 다반사 환경단체 조차도 해체요구
높은 결석율(6차 이후 30%이상)...비전문가로 구성돼 기계적 중립도 지적

고리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소
고리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소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 재검토위 출범 배경

고리1호기가 1978년 가동을 시작한 이후 증가하는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문제는 국가적 현안이 됐다. 40년이 지난 현재도 중간저장시설 또는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는 1983년 이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확보를 9차례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지난 2005년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시설만 주민투표를 거쳐 경주로 결정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 나라는 없으며 핀란드만이 올킬루오토섬에 2023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에 있다. 정부는 영구처리시설 본격 가동 전에는 임시저장시설을 건설해 방폐물을 저장했다 이전하겠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정부의 임시방편에는 관련 기술이 발전해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이라는 긍정적 심리가 담겨 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영구처리시설 부지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의 원전 부지가 영구처리장으로 전락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를 부인한다. 문제는 영구처분시설 부지가 확보될 때까지 현재의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에 임시저장소 격인 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해야 하는데 이마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위원장 홍두승)를 통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건설 계획이 담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으며, 2016년 7월 열린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위원장 황교안 국무총리)에서 심의, 확정했다. 계획에 따르면 2028년까지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이 들어설 부지 선정을 추진하며 부지확보 7년 후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고, 24년 후(2052년 예상)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키로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 추진계획’을 제시하면서 지난해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을 발족했다. 지난 5월 29일에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원회)를 출범했다. 이유는 2016년 7월 수립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국민, 원전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재검토준비단의 법적 근거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6조의 2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의견수렴을 추진하기 위해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설치한다’이다.

◆원전 전문가 없는 재검토위원회 구성

재검토위원회는 위원 15명에 위원장은 정정화 강원대학교 공공행정학과 교수를 선임했다. ▲인문사회 ▲법률과학 ▲소통·갈등관리 ▲조사·통계 등 4분야, 남성 10명 여성 5명, 30대 1명, 40대 6명, 50대 7명, 60대 1명으로 구성됐다. 산업부는 중립적 전문가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면면을 보면 지난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와 구별되게 비전문가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11월 8일 전문가 검토 그룹을 출범하고 재검토위원회에서 확정한 의견수렴 의제를 논의키로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선 전문가들이 포함된 지난 정부의 공론화위원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또 중립적인 비전문가일지라도 위원 선정 후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지만 1년 시한의 재검토위원회에서 얼마나 깊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수차례 시행한 회의 내용은 더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높은 결석률, 빈약한 회의록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위원들의 의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참석률을 보면 8월 7일 열린 제6차 회의 때 15명 중 10명 참석 5명 결석(결석률 33%)을 시작으로 ▲7차 5명 ▲8차 6명 ▲9차 5명 ▲10차 7명 ▲11차 6명이 결석하는 높은 결석률을 보였다. 높은 결석률은 비전문가인 위원들의 사명감 부족에 기인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관계자는 “회의 때 1명 정도 결석했다”며 “전문가는 물론 비전문가 위원들의 의욕이 높았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회의록의 내용도 모두 익명으로 처리됐으며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없다.

정정화 위원장은 “결석률이 높은 것은 위원들의 바쁜 일정 때문이다. 3~4시간 회의했으며 비공개 속기록이 따로 있다”고 해명했다.

공개된 회의록을 보면 의견수렴 대상을 ▲전문가/이해당사자 ▲전 국민 ▲원전지역주민으로 구분했다. 영구처분시설, 중간저장시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임시저장시설은 원전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이하 준비단)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역주민을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전 주변 5km 이내로 볼 것인지 방사선비상계획구역(20~30km)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준비단에서도 논란이 됐다. 탈핵단체에서는 원전 사고의 위험은 5km 이내에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비상계획구역까지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인근 주민이 느끼는 사용후핵연료 관련 관심도와 불안감은 훨씬 크며 건식저장시설은 원전에 비해 위험도가 낮기 때문에 5km 이내 혹은 원전 소재 기초지자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급한 경주, 전국 최초 지역실행기구 설립

재검토위원회의 모태가 된 준비단은 지역공론화보다 전국공론화를 먼저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역실행기구 구성 추진 계획안이 3차 회의 때 원안 가결됐으며 전국 공론화 문제는 제11차 회의 때까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3차 회의록에 따르면 지자체를 협의상대로 하고 지자체장 자율로 10인 이내로 위원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의제는 재검토위원회가 요청하는 의제에 한정하고 지역에서 제기하는 의제에 대해서는 사전에 위원회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지역에서는 선출직인 지자체장을 협의상대로 하고, 위원 구성 권한을 주게 된다면 울주군처럼 유권자 수가 적은 원전지역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울주군수는 주민의견 수렴범위를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30km에 해당하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의견을 위원장에게 밝혔다.

반면에 경주시장은 원전 반경 5km 이내로 인접한 지역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오규석 기장군수 역시 지역주민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주시는 재검토위원회 논의가 답보상태라며 지역실행기구를 거치지 않고 지역주민과 한수원 간 협의를 통해 건식저장시설 용량 증설을 산업부와 재검토위위원회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11월 21일 전국 최초로 ‘월성원전소재 지역실행기구’가 출범했다.

월성원전의 포화상태가 빠른 것은 경수로 방식을 택한 다른 원전과 달리 중수로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증설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거부반응이 덜하다.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모습. 월성원자력발전소만 유일하게 건식저장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 중이다.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모습. 월성원자력발전소만 유일하게 건식저장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 중이다.

◆공론화 언제까지 해야 하나

공론화했던 사안을 다시 공론화한다면 언제까지 공론화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3심제인 법원 판결과 달리 공론화는 횟수 등에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도 다시 공론화할 수 있으며 전체 국민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공론화 위원들의 결정과 대의제와의 관계도 근본적인 문제다.

그래서 공론화라는 명칭 대신에 재검토로 명명했다는 말도 들리는 것이 사실이나 정정화 위원장은 재검토위원회는 공론화 방식을 채택했다고 답변했다,

정부에서는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른 사용후핵연료 감소와 국민 의견수렴 부족을 근거로 공론화방식으로 재검토한다고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재검토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는 “영구처분시설 부지와 같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확보가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지만 새로 구성된 재검토위원회라고 특별한 묘안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론화 시절에도 내부갈등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지만 재검토위원회 역시 환경단체에 의해 해체를 요구받고 있다.

재검토위원회에서 공론화위원회와 차별되는 묘안을 내지 않는다면 재검토위원회의 출범은 국민 안전보다는 정권 교체에 따른 정무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역의 원자력 전문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은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전 정권에서 이뤄진 공론화과정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정부는 국민이 안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안전한 관리정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년 시한의 재검토위원회에서 부실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면 이 또한 새로운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실제적이며 적용 가능하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안전한 관리 정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몇 세대를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엄중한 사안임을 감안해 투명하고 공정한 진행과 국민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공론화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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