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중에 트럼프 같은 사람은 없었다. ‘경고(Warning)’라는 제목의 책은 트럼프 대통령을 항공 관제탑의 12살 아이에 비유했다. 항공 관제탑에서 아무렇게나 버튼을 눌러대는 12살 아이 같다는 것이다.

트럼프라는 사람은 정말 비호감이다. 인종, 민족, 종교적인 증오를 노골적으로 들먹인다. 매사 거짓말이고, 경쟁자에게는 잔인하며, 인격적으로는 미숙하다. 예의도 없고 염치도 모른다. 언론의 비판은 무조건 ‘가짜뉴스’로 몰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바로 ‘사기꾼’으로 공격한다. 아첨에는 약하고, 지적인 깊이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북미정상회담 전날,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방송을 4시간 동안 보느라 출발부터 늦게 한 사람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의회의 탄핵 조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여전히 지지도는 40%대 초반을 유지한다. 다른 나라 대통령에게 자기 경쟁자에 대한 조사를 압박하는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는데도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베팅사이트에서는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40%를 넘는 유일한 사람이다.

얼핏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미국은 트럼프로 인해 유치해졌을 뿐이다. 전통적인 우방과의 신뢰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고, 미국의 위상은 오히려 추락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여전히 강력하다. 공화당 의원들은 지금도 트럼프의 눈치를 본다. 공화당원들의 트럼프 지지율이 90%에 이르기 때문이다.

교육수준이 낮은, 다시 말해 “덜 배운 백인 남성”들이 트럼프를 특히 많이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 말고도 많다. 그들이 어리석거나 비열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유무역으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사람이라면 자유무역을 비판하는 쪽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 적지 않은 미국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정작 미국의 노동자나 그 가정보다 보편적 이상주의에 더 관심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미국의 이익을 강조하는 트럼프는 확실히 내 편이다. 노골적으로 일본에 옥수수를 팔고, 중국에는 관세를 협박해가면서 농산물 수입을 강요하는 트럼프는 누구보다 나은 정치인이다.

물론 트럼프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전후 최장기 호황을 경험하고 있는 미국의 경기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우리나라보다도 높은 2.9%였다. 실업률은 50년 만에 최저치인 3.6%였다. 이 모두가 트럼프의 공은 아니라 해도, 기여한 바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 미국의 경기호황은 1조5000억 달러의 감세와 정부의 지출증가 덕분이기도 하다.

어떤 정당이든, 또는 어떤 정치인이든,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준다면 그들이 내 편이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결국은 그 정당이 집권해서 하는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격은 다음 문제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진보 정부가 품위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미국의 보수 정치 지도자와 잘 맞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잘되기를 바라는 곳 중의 하나다.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북미대화가 그렇게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실리는 이념이나 인격보다 먼저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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