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연일 벌어지는 시위에 청명한 하늘마저 서럽다. 광장의 피곤함을 달래려 들른 서점에 책 한 권이 눈길을 끈다. ‘팩트풀니스’, ‘사실충실성’으로 쓰기가 어색했는지 한글날에 광화문에 계신 세종대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면서 책을 집었다.

책을 펼치자 세상에 대해 얼마나 바로 알고 있는지 묻는다. 지난 100년간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늘었는지, 세계 인구 중에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정답은 세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데 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정답률은 침팬지보다도 못했다고 한다.

한스 로슬링은 ‘국경없는 의사회’의 공동설립자이자 데이터분석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공중보건에 관심을 갖고 경제발전과 건강, 환경에 대해 연구했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의 전파를 위해 갭마인더 재단을 설립하고 편견으로 왜곡된 대중 인식을 바로 잡고자 ‘팩트풀니스’를 썼다. 원전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것도, 서초동과 광화문의 목소리가 다른 것도 인식과 사실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한스 로슬링은 데이터로써 세상이 좋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실과 달리 대중은 인구증가, 환경오염, 자연재해 등으로 세상은 나빠지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 이유로 극과 극으로 세상을 구분하는 간극본능,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에 주목하는 부정본능,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직진본능, 잘 모르거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본능, 다양성과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일반화 본능, 어떤 집단이든 운명에 구속된다는 운명본능, 실제 상황은 복잡다단함에도 이를 단순화하려는 본능, 진실을 찾기보다 잘못한 자를 찾으려는 비난본능, 두려움에 다급히 결정하려는 본능 등을 제시한다.

세상은 부자와 빈자로 나뉘어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대표적인 간극 본능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중간은 없다. 그런데 로슬링은 국민소득에 따라 국가군을 4단계로 분류하고 대부분의 인류는 중간소득 계층의 국가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해 왔으나, 대중의 인식은 200년 전 85%의 인류가 극빈에 있었던 기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극과 극으로 보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은 나쁜 쪽이 될 수밖에 없다.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에도 얼마든지 중간 지대가 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이다. 다 좋은 에너지도 다 나쁜 에너지도 없다. 어떤 에너지이건 장점과 약점을 가지고 양극단 사이에 있다. 그래서 에너지 정책의 본질은 서로의 나쁜 것을 서로의 좋은 것으로 상쇄할 수 있도록 조합하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은 중간지대의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종종 공포본능을 이용한다. 1950년대 환경운동은 DDT에 주목했다. DDT는 해충과 특히 모기 박멸을 통해 말라리아 퇴치에 공헌했다.

그러나 레이첼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은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촉발하여 DDT를 유해물질로 퇴출시켰다. 2006년이 돼서야 세계보건기구는 DDT의 불명예를 벗겨 주었다.

공포본능의 사례로서 한삼희 조선일보 환경전문기자는 그의 저서 ‘리스크 테이블’에서 일본의 다이옥신과 우리나라의 인간광우병 사태를 거론한다. 두 사건 모두 막심한 사회적, 경제적 상처를 남겼다. 로슬링은 후쿠시마 사고로 공포본능과 다급함 본능의 피해에 대해 얘기한다. 방사선에 대한 공포로 다급하게 추진된 대피가 방사선에 의한 피해보다 컸다는 것이다.

이제 그에게 탈원전을 묻는다. “간극본능을 자극해 나쁜 에너지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나쁜 것에 주목하는 부정본능을 바탕으로, 안전과 폐기물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직진본능과 보이지 않는 방사선에 대한 공포본능을 이용하고 일반화 본능으로 한국 원전의 특성을 보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과 동일시한 것이 탈원전입니다. ‘팩트풀니스’의 왜곡된 인식을 만드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데이터로 맞서십시오. ‘팩트풀니스’에서 가장 정답률이 높았던 질문은 기후변화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데이터가 기후변화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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