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베클리 테페는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는 배불뚝이 언덕(Gobekli Tepe)이다. 이곳에는 기원전 9000년, 후기 구석기 시대에 세워진 석조 건축물이 있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불룩한 테페(언덕)에서 T자 모양의 거대한 돌기둥을 제작했는데, 높이가 5m를 넘고 무게도 20t에 이르는 당대의 랜드마크였다. 원하는 크기로 사암을 잘라낸 후 단단한 차돌을 사용해 매끄럽게 다듬고 여러 가지 동물과 상징을 조각했다. 사냥꾼이 잡은 들소와 사슴, 여우, 새, 뱀 등을 새겼는데, 그 솜씨가 피카소나 모딜리아니 수준이다.

무려 6000년을 앞서 솔즈베리의 스톤헨지와 같은 것을 세웠던 것인데, 넓은 평원 가운데 입지한 점, 원형 열주 배열, 중앙에 가장 거대한 석주를 세운 점 등이 거의 비슷하다. 다만 스톤헨지가 자연 상태의 돌을 옮긴 것에 불과하다면, 괴베클리 테페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거대한 돌덩어리 하나로 석주를 만들고, 이를 옮기고 일으켜 세워 만든 것이니 당시 기술과 집단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가히 피라미드 수준의 위대한 인공물이라 할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구석기 시대 최고의 신전 건축물이라거나 수렵시대의 메카 같은 곳이라고 짐작한다. 지역의 여러 부족 사냥꾼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신에게 감사하며 교류했던 장소라는 것인데, 인류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니 그럴 듯한 설명이다. 다른 학자들은 풍성하게 채집한 보리와 밀로 술을 만들고 축제를 즐기던 장소라고 설명하며, 의외로 술이 농사를 짓기 전 수렵시대에 발명되었다고 신기해한다. 이는 건축물 근처에서 발굴한 그릇에서 보리와 밀을 발효시킬 때 생기는 화학성분이 검출되면서 만들어진 설명이다. 아마 이런 설명 모두 맞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괴베클리 테페를 세울 당시는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따뜻해져 사냥이 잘되고 야생밀과 야생보리 등 먹거리도 풍성했지만 동시에 거대한 혼란과 위협이 다가오던 시기였다. 인구가 대략 800만 명을 돌파했는데 당시 수준에서는 너무 많은 수였다. 더구나 그전 시기 대비 인구 증가율은 2배,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2.5배가 되었기에 구석기 수렵의 생산성으로는 강남구 면적의 사냥터가 있어야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구 전체로 따져보면 고작 200만 명 어치의 사냥터가 있을 뿐인데, 인구가 800만 명을 넘어서 적정 수준의 3배 이상이 된 것이다.

아마도 지구 곳곳에서 인구 압력으로 인한 부양 한계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수렵시대 정규직을 보장하던 일터(일자리)가 급격하게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부양의 터전이 모자라게 되면 경쟁이나 싸움이 벌어지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밀어내게 된다. 힘이 강한 부족이 약한 무리를 밀어내는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이긴 자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하고, 밀려난 자는 이코노믹 마이그레이션(Economic Migration)이라 하는데, 인구생태학에서는 적정 부양능력의 3배를 넘어서면 이런 싸움이 극단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고 본다. 괴베클리 테페를 중심으로 하는 아나톨리아 고원과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특히 인구 압력으로 인한 갈등이 심한 지역이었다. 평생 사냥을 지속하고 싶은 부족은 싸움과 경쟁을 통해 터전을 지키며 약한 자들을 변방으로 밀어냈다. 이렇게 밀려난 자들은 편한 사냥 대신 험한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농업이었고, 평생 땅을 일구는 수고를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노동의 시작이었다.

사냥터만 있다면 수렵만큼 편한 일도 드물다. 원할 때 원하는 곳에 나아가 짧고 굵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 수렵이다. 지금 시대에서는 연예활동, 창작, 창업,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등이 수렵인데, 이들과 회사(농사)를 비교하자면 당연히 수렵이 속 편하고 몸 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인구 압력이 심해져 경쟁과 싸움이 치열해지면 사냥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하는 일이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된다. 당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는 특히 심했을 것이다.

이럴 때 기득권을 가진 부족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전략적인 투자를 한다. 부족의 힘을 드러내어 과시할 수 있는 신전이나 랜드마크를 크게 지어 경쟁자들에게 과시하는 것이다. 사방에서 잘 보이는 언덕을 골라 신의 권능이 기득권을 보호하고 있음을 큰 돌에 새겨 과시하거나, 혹은 주변 부족들과 연맹하고 전체 연맹체가 참가하는 축제를 열어 단합된 위력을 드러내 보이면 싸움과 경쟁 없이 사냥터와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한 번 만들면 적어도 다섯 세대, 100년 동안은 싸움을 피할 수 있었고, 사냥의 업은 대물림되는 정규직으로 지속된다.

괴베클리 테페는 구석기 시대의 선택받은 자들이 세운 신전이자 과시이고, 기득의 표시였다. 테페에서 밀려난 자들은 신전도 과시도 기득도 없었다. 하여 혁신, 새롭게 태어나기를 했을 것이다. 농업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리고 세상의 대부분을 새로운 것으로 채우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거쳐 에게해와 인도, 실크로드의 동쪽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물론 테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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