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이제 전세계 전력산업은 4번째 혁명으로 빠져들고 있다. 에디슨의 상업적 전력기술 개발 그리고 에디슨과 테슬라 간 조류전쟁(the Current War)은 제1차 전력산업혁명을 이끌었고, 뒤이어 사무엘 인설은 자연독점이론에 근거한 전력산업 수직통합체계를 바탕으로 전력산업의 제국화를 달성함으로써 제2차 전력산업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수직통합체계의 근간이 되는 규제협정(Regulatory Compact)은 전기사업자에 대하여 수익규제의 대가로 독점권과 적정수익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경쟁자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은 결과 막대한 비효율을 초래하였다. 아울러, 전기사업자에게 부여된 독점권은 많은 국가에서 전력산업을 국유화 내지 공기업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력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매우 높은 사회주의적 특색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 각국은 전력산업에 만연한 비효율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고 민영화와 자유화를 통해 전력산업을 경쟁적 전력시장의 형태로 변모시켰다. 우리는 이를 제3차 전력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전력산업은 ‘3D+E’라고 불리는 탈탄소화(Decarboniz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 분산화(Decentralization) 및 전기화(Electrification)를 통해 또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사 이래 산업의 혁신과 진화는 모두 자본에서 비롯되어 왔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라는 자본에 대한 도식화된 분류법에서 탈피한다면, 한 국가의 산업의 흥망을 결정하는 자본은 기술자본, 금융자본, 에너지자원자본, 그리고 사회자본을 포괄함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창조적 파괴의 직접적 단초인 기술자본은 그 자체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자본에 대한 파급력 또한 매우 높다. 세계 금융자본을 호령하는 골드만삭스의 블랭크페인 회장은 “우리는 기술기업이다(We are a technology company)”고 선언하였다. 한때 600명에 달하던 골드만삭스의 주식트레이더들은 트레이딩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되어 이제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에너지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셰일가스 혁명 또한 수압파쇄법과 수평시추법이라는 기술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자본과 금융자본의 혁신과 축적, 그리고 에너지자원자본의 개발은 견고하게 구축된 사회자본의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회자본이 오랜 축적의 과정을 통해 제도화된 것이 자유와 법치이며, 그 결정체가 바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다. 사회자본은 자유와 법치의 수호 없이 축적될 수 없으며, 자유와 법치가 약화할 때 함께 잠식된다. 사회자본의 잠식과 파괴는 기술자본과 금융자본의 잠식과 파괴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은 대런 애쓰모글루과 제임스 A. 로빈슨의 역작'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명쾌하게 입증되었다. 막대한 석유매장량을 보유하면서도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사회자본의 붕괴가 에너지자원자본을 침식시키는 파급효과를 낳음을 입증하는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전력산업계는 십수년을 제2차 전력산업혁명과 제3차 전력산업혁명 사이의 미로에 갇힌 채 방황을 거듭해 왔다. 급기야 최근에는 여러 측면에서 사회주의 또는 그 아류인 계획경제를 지향점으로 착각하는 듯한 퇴행적 모습이 완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본의 혁신과 축적을 위한 최첨단에서 맹활약하여야 할 전문가들이 자신의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지 못하는 모습은 소비에트체제 하의 비운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전력산업계를 떠받들고 있는 사회자본이 무너지고 있으며, 그 귀결은 자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퇴행과 몰락에 분연히 저항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네가 나의 양들을 버리고 떠나니 나는 로마로 가서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히리라.” 로마황제 네로의 박해를 피해 달아나던 사도 베드로는 이 한마디에 로마로 발길을 돌려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였다. 핍박으로 몰락 직전이었던 그리스도교는 기적적으로 부활하였고, 고대 로마, 유럽 나아가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다. 4번째 전력산업혁명을 앞두고 전력산업계의 전문가들 또한 분기점에 서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성쇠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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