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은 ‘명량’, ‘신과 함께: 죄와 벌’에 이어 누적 관객 수 1426만2766명(영화진흥위원회 발권통계 기준)을 동원해 한국 역대 흥행 영화 3위를 기록한 영화다. 2014년 12월 7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180억 원이 투입된 큰 작품이다.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관객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것은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 덕분이었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는 별칭답게 전통 세대의 인생 험로를 애잔하게 영상에 잘 담아냈다. 후배 세대가 선배 세대의 굴곡진 삶의 노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이만한 영화가 있을까 싶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갑자기 짠하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선배 세대가 대신 겪은 고난과 노고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영화다. 불행했던 역사를 교훈 삼기보다는 애써 지우려고도 하는 후배 세대가 꼭 챙겨봐야 할 영화이다.

영화는 1950년 한국전쟁 흥남 철수 작전의 긴박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이 작전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악화하자, 1950년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간 미국 10군단과 대한민국 1군단을 흥남항에서 피난민과 함께 선박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영화는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네 가족이 간신히 배에 올라타는 모습을 그려낸다. 배에 오르지 못하고 놓친 막내딸 막순이를 찾기 위해 아버지는 탔던 배에서 다시 내려간다. 그전에 어린 아들 덕수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명심해 들으라. 내 없으면 장남인 네가 가장인 거 알지? 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이 제일 우선이다. 알았지? 시방부터 네가 가장이니까. 가족들 잘 지켜라.” 그리고 아버지는 배에서 내려 이름을 부르짖으며 막내딸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헤어지고 만다. 1950년 12월 23일 오전 11시. 14,000여 명의 피란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부두를 떠난다.

부산으로 피란 온 장남 덕수는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그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남동생이 대학에 합격하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파독 광부 모집에 지원한다. 체력검사로 쌀가마니 들기를 통과하고, 면접에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호소해 합격한다. 독일에서 시체를 닦는 일을 하며 힘들게 일하는 파독 간호사 영자(김윤진 분)를 만난다. 영자는 자신의 개인사를 묻지 않은 덕수에게 질문한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덕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가난할 거고, 장녀일 테고, 쎄가 빠지게 번 돈 한국에 부쳤을 거고.” 그 시절 맏이의 역할이 그랬다. 전통 세대가 살던 시절의 ‘맏이 콤플렉스’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남, 장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 애정이 커서 자신이 잘못하면 그 벌로 동생들을 돌봐야 하거나 동생들이 잘못한 경우에도 맏이가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전통 세대의 자녀인 X세대까지도 맏이 콤플렉스는 계속 되었다.

덕수는 탄광에서 일하던 중 갱도가 무너져 갇히는 사고로 죽을 고비도 넘기지만 귀국해 영자를 평생 배필로 맞이한다. “여보, 나는 장남이다. 장남은 가족을 돌봐야 하는 것 아니야? 누구는 가고 싶어서 가나? 내 팔자라고.” 덕수는 아내에게 이 말을 남기고 가족의 반대에도 전쟁 중인 월남 파병을 지원한다. 기술 근로자로 근무하다 총탄을 맞아 다리를 다친다. 그곳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오래 여운으로 남는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다. 우리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그 망할 놈의 6.25사변을 우리 도주가 겪었어도. 그 지옥 같은 작업장에 우리 기주가 들어가 있었다고. 여기 월남 이 전쟁 통에 우리 얼라들이 돈 벌러 들어와 있다고. 모든 게 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그런 일을 우리 자식들이 아니라 그냥 내랑 당신이 겪어 삔 게 참 다행 아이가?”

1983년 온 국민을 울렸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 가서 사는 막내를 찾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선하다.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저녁 시간, 나이 지긋한 덕수는 혼자 안방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회상한다. “막순이도 찾았고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피란 때 헤어진 아버지의 옷을 움켜 안고 오열한다. 거실에서는 행복한 가족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평온한 서울 밤 야경이 화면에 잡힌다. 지금의 평화 속에는 전통 세대의 피와 눈물과 땀, 상처가 숨어있다. 그들의 인고가 징검다리가 되어 만들어낸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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