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문화평론가)
윤희성(문화평론가)

언젠가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화원형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고구려의 활달한 기상과 힘을 느낄 수 있는 고분벽화의 모습을 보원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사업으로서, 단순한 사업참여를 떠나서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꼭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 열과 성의를 다했던 기억이 있다.

가볼 수 없고 우리 눈앞에 있지도 않은 고구려고분벽화를 복원하는 작업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우선 거의 실제 크기와 같은 사신을 확보하여,정밀한 방법으로 현상을 그리는 모사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원판사진으로 정밀하게 찍고, 2D, 3D화해서 마치 현장에서 보는 것과 같도록 재현하는 사업이다.대부분의 작업이 디지털로 이뤄지지만, 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장을 모사하기 위해 그리는 과정이 이 사업의 하이라이트였고, 그래서 이 작업을 국내 유명 동양화 학과가 있는 곳과 협업을 하게 되었다.

현장모사는 가장 정교한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원형 벽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훼손된 부분까지 정밀하게 베껴 그리는 방법으로, 한 폭당 서넉달 이상씩 걸리는 작업이었다. 사진을 실물 사이즈로 조정해서 출력하여 밑그림을 인쇄한 뒤에, 백토와 반수(아교물+백반)처리를 한 화벽에 배접을 하고, 전문 동양화가와 역사학자가 같이 채색과 상처, 훼손등의 고증을 통해 재현토록하였다.

이 어려운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바로 채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물감, 즉 안료가 없었던 거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안료를 모두 찾아 테스트해봤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한던 중에, 결국에는 참여 연구자의 자문을 받아서 일본 동경예술대학의 도움을 받아서 적합한 안료를 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 동경예술대학은 이미 중국과 북한, 일본 등의 고분벽화의 안료성분을 분석하여 재현용 안료를 확보하고 있었고, 이 안료를 사용하여 제작하는 법까지 매뉴얼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이들은 이 안료를 제작하기 위해 미술대 회화과 교수들과 연구진들이 아주 오랫동안 전세계, 특히 동양권의 고분들을 직접 답사해서 샘플을 채취하고 분석하며 준비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이 안료제작을 위해 갖고 있었던 사진 실사영상 역시 우리가 확보한 영상보다 훨씬 정교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고, 한편으로는 프로젝트를 잘 완수해야 하기에 급히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과 부족함이 남아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동경예술대학에서 고미술을 하는 곳이 우리 고구려고분 말고도, 중국의 고분이나 서안 등 유명한 회교권 고분의 연구는 물론 안료까지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일종의 경외심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도 남의 나라것까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것 정도는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는 디지털의 데이터베이스화에 몰두하고 있으며, 4차산업의 이슈에 매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원천기술면에서는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세상을 정교하고 색감 풍부하며 아름답게 찍는 카메라를 만드는 것이 원천기술인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물감을 만드는 것도 원천소재기술인 것이다. 이런 분야에 필요한 원천기술과 소재가 없으면, 우리는 우리의 문화예술의 재현하는데 여전히 일본 기술을 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해묵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는, 꼭 시대의 요청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술강대국, 문화강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원천기술은 생각부터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고, 지금부터라도 각자 맡은 곳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기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가까운 시기에, 우리가 우리가 개발한 우리의 안료로 우리의 잊혀진 문화재들에 색을 입히는 감격스런 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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