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발전소에서 도쿄전력 직원이 방사능 오염수 저장탱크 주변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다.(제공: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발전소에서 도쿄전력 직원이 방사능 오염수 저장탱크 주변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다.(제공: 연합뉴스)

2020 도쿄 올림픽이 17일 현재 281일 남았다. 개월 수로는 9개월, 사실상 임박한 셈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올림픽을 위해 태극전사들은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면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메달을 획득했을 때 거두는 성취감은 아마 가문의 영원한 영광으로 이어질 것이다. 본인의 최대 인생 자아실현을 이루는 셈이다.

금전적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메달 획득에 따른 연금 수령, 병역 미필 남성 선수의 경우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돼 사실상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 금메달을 획득하거나 눈에 띄는 기량을 선보이는 경우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광고 모델로 출연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도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생활의 활력소를 얻을 수 있다. 꼭 메달이 아니더라도 국제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이 수많은 플러스 요소에도 불구하고 도쿄 올림픽은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되는 대회’로 사회 곳곳에서 인식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방사능 때문이다.

후쿠시마현 아즈마 야구장 인근에는 방사능 제염토를 쌓은 자루를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여전히 위험하다는 전언이다.
후쿠시마현 아즈마 야구장 인근에는 방사능 제염토를 쌓은 자루를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여전히 위험하다는 전언이다.

◆ 방사능 터진 후쿠시마에서 ‘플레이볼’

8년 전인 지난 2011년 3월 12일 오후 3시 36분경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마치 소재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원전 1호기의 수소가스가 터진 사고다. 전날인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18.1초에 센다이시 동쪽 70㎞인 산리쿠 연안에서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인해 그 연쇄작용으로 원전이 폭발하고 말았다.

누출된 방사능은 약 370PBq(페타베크렐) 규모다. 이는 37경Bq(베크렐)에 해당한다. 1초에 1개의 원자핵이 붕괴할 때 1Bq로 정의한다.

Bq는 방사능의 활발한 정도를 재는 수치다. Bq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경(京) 단위로 방사능이 활동한 셈이다. 1조에 1만을 곱하면 1경이 된다.

8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후쿠시마현은 방사능으로 인해 ‘죽은 동네’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이곳에서 올림픽 경기의 일부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의 일부를 후쿠시마현 아즈마 야구장에서 열 계획이다. 이 야구장은 원전에서 70㎞ 떨어진 곳에 있다.

야구 경기는 첫 경기만 후쿠시마현에서 열 방침이지만 소프트볼 경기는 절반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경기 수가 잡힐 전망이다.

한 경기만 뛰든 여러 경기를 뛰든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다. 단 한 번 피폭돼도 암에 걸릴 수 있고 기형아를 출산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가 방사능이다. 그만큼 후쿠시마현 올림픽 개최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 사안이 일본의 소관이라면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은 어쩌면 방사능이라는 더 큰 적과 맞서야 할 수도 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은 어쩌면 방사능이라는 더 큰 적과 맞서야 할 수도 있다.

◆ 야구는 日 자부심…후쿠시마 한일 개막전 ‘빅 게임’

일본이 야구 경기를 후쿠시마현에서 여는 목적은 다분히 정치적인 요소와 국제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전언이다. 야구는 일본의 국기(國技)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야구와 소프트볼은 2020년 한정으로 올림픽 종목으로 복귀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기에 가능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의 안전함을 세계를 향해 과시하고자 한다. 방사능 문제를 상당히 해결했다는 정부의 힘을 알리려는 목적을 내포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종목인 야구, 상당한 의미를 품은 개막전을 여는 이유다.

아직 대한민국의 야구 출전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다음 달 열리는 WBSC 프리미어 12에서 2위 안에 들면 된다. 이 대회는 일본이 출전하기 때문에 일본을 제외한 상위 2개 팀에 들면 된다.

어려운 여정이 될 전망이지만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4년 전인 2015년 제1회 프리미어 12에서 우승을 차지한 야구 강팀이다. 우승은 장담하기 어려워도 올림픽 티켓은 무난히 획득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도쿄 올림픽 출전이 확정될 경우 일본과의 경기가 개막전으로 이어질 공산이 높아 보인다. 야구 한일전은 세계적인 이벤트다. 최근 사이가 경색된 양국이 벌이는 자존심 대결이다. 높은 시청률은 이미 확정적이다. 이 경기가 후쿠시마현에서 열리면 일본의 의도는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은 슈퍼스타들이 포진돼 있다. 김광현(SK 와이번스), 양현종(KIA 타이거즈), 김현수(LG 트윈스), 양의지(NC 다이노스), 박병호(키움 히어로즈), 황재균(kt wiz), 김재환(두산 베어스), 민병헌(롯데 자이언츠), 김상수(삼성 라이온즈) 등은 각 팀을 대표하는 인기 선수들이다.

아즈마 야구장 인근에는 방사능 제염토를 쌓은 자루를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다. 물론 제염토 자루 부지가 지금은 철거됐다고 알려졌다.

일본은 시간이 많이 지났고 제염 작업을 순조롭게 했으며 야구장 인근 위험 요소를 없앴기 때문에 안전에는 지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야구는 야외 경기다. 그린피스 숀 버니 수석 원자력 전문가는 지난 8월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의 문제점과 진실’ 기자간담회를 마친 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참여 당위성 여부에 대한 질문에 “방사능 농도 자체는 일본 정부가 밝힌 바와 같이 낮아졌을 수 있다”고 전제했다.

버니 수석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8년이 됐고, 그 사이 방사능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선수들이 호흡을 통해 마시는 먼지를 통해 과도한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대한민국의 대표 야구선수들이 방사능에 노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후쿠시마현에 가지 않는 다른 종목의 선수들도 방사능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대표를 맡은 김영희 변호사는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반평화, 반환경 2020 도쿄 올림픽 대응을 위한 토론회’에서 ‘도쿄 올림픽과 방사능 위험’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면서 “야구 한일전이 열릴 예정인 후쿠시마현 아즈마 야구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도쿄 현지조차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일관계는 현재 경색돼 있다. 올림픽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가 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양국의 관계는 파국 행이다.
한일관계는 현재 경색돼 있다. 올림픽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가 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양국의 관계는 파국 행이다.

◆ 보이콧 여론 크지만…불참하자니 골머리

방사능에 대한 공포감이 크지만, 대한민국이 섣불리 올림픽 보이콧을 단행하기도 쉽지 않다. 우선 이 토론회를 개최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안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오산시)과 대한체육회 측은 올림픽 불참 카드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입장을 전했다. “방사능 문제가 심각하다면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본지의 질문에 안 의원은 “이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근 대한체육회 사무부총장은 “방사능 문제에 대해 면밀하게 짚어보면서 일본 측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 같은 행동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보이콧 논의는 시기상조로 보인다”고 밝혔다.

방사능 공포감이 크지만, 섣불리 불참을 결정하기는 어렵다. 국제사회의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잔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정치, 경제, 외교 등의 요소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소지도 있다. 일본과 타협하고 국제사회의 공조를 요청하는 대한체육회의 행보를 마냥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만에 하나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가 방사능에 피폭된 사실이 의학적으로 확인될 경우 다른 불이익보다 더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 사람의 건강과 생명은 국익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가치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사실이 불거지는 경우 한국과 일본의 경색된 관계는 개선은커녕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즉 대한민국은 지금 딜레마에 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