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원 한국동서발전㈜ 신성장사업처 처장
안희원 한국동서발전㈜ 신성장사업처 처장

몇 년 전, 업무차 미얀마를 방문했었다. 공식일정을 마치고 수도 인근의 관광지에서 일행과 현지 문화 체험을 하던 중, 커피 한잔하기 위해 동네 커피 판매점에 들렀다. 대형 프랜차이즈 원두커피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커피라고 받아든 것은 기대와 달랐다. 차갑고 설탕은 많이 들어서 달았으며 묽기는 너무 묽어서 커피음료를 마시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다 이유를 알아냈다. 작은 화로에서 나무 자투리를 이용해 커피 물을 끓였기 때문이었다. 전력산업 전문영어로 ‘바이오매스 커피’(?)라 할 수 있다. 어린 직원이 부채질을 하면서, 연기를 마시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끓이는지 몰랐다. 사실을 알게 되자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 국민은 스위치만 켜면 금세 끓는 커피 물에 익숙해져 있다. 전국의 전력계통이 환상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원자력부터 신재생에 이르기까지 최신식 설비로 생산하는 전기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부채질로 유지하는 화롯불은 낯설기까지 하다.

그만큼의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아도 편리하게 전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불편함을 이겨내야 한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발전소를 짓는다고 하면 반대가 시작된다. 원자력은 위험해서, 석탄은 탄가루가 날려서, 신재생은 자연을 훼손해서 안 된다. 해결책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바이오매스에 의존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대대손손 누리려면, 전력생산을 하는 방법을 주민들과 함께 모색해야 한다. 발전소 건설의 초기부터 주민들에게 발전소 건설사업의 필요성,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낱낱이 밝히고 동의와 참여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를 바탕으로 필자가 진행하는 충북 음성군의 LNG 사업은 지역주민과 지자체, 사업자가 참여하는 검증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발전소의 건설이 가져다 줄 경제적, 환경적, 문화적 영향을 하나하나 고려했다. 단계 단계마다 미흡한 점은 언제든지 문제제기를 하면 후속 단계에서 보완할 수 있게 하였다.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서로 간에 존재하는 입장의 차이는 대화를 발판으로 조금씩 좁힐 수 있었다.

동서발전은 검증위원회를 통해서 주민들 모두가 납득하는 발전소 건설의 모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각장의 폐열로 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가 친환경인 LNG로 바꾸어 허가가 났지만 여전히 주민반대에 부딪히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친환경이라고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토론과 이해의 공유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전력수요는 과거처럼 획기적으로 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발전소를 지을 기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가 생기면 하나라도 선진국처럼 짓자. 공론화 위원회든, 검증위원회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내 지역의 경제, 환경의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외형과 내실 모두에서 선진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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