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설비 내구연한을 둘러싼 공론화 작업이 한창이다.

내구연한(耐久年限)은 어떤 기기를 원래의 상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으로 설비 수명을 의미한다.

전기산업계에선 과거에도 내구연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 잠시 ‘반짝’하는 사라지는 수준이었다.

국내 전력설비는 1990년대까지 가파르게 확충됐지만 2000년대 들어 증가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 이제는 신규 설비 확충보다는 기존 설비의 점검 관리가 더욱 중요시되는 분위기다.

관리의 핵심은 경제적인 운용에 앞서 안전성을 유지, 검증하는 것이다. 더구나 전력기기는 사고 여파가 크기 때문에 일반 기기보다 사안이 중대하다.

그러나 전력기기의 상태가 노후화되고 고장의 빈도가 잦아지면서, 전력설비에 대한 감시·예측진단 기술은 고도화되고 있지만 정작 내구연한과 관련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못했다.

특히 전력기기의 잔존 수명은 사용 환경이나 조건, 주기적 점검 등에 따라 같은 시기에 설치된 기기라도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일반화하기엔 그만큼 까다로운 이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3월 전기조합이 ‘수배전반 내구연한’을 화두로 꺼냈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삼화 의원(바른미래당)이 배전반 교체주기를 30년으로 정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수배전반은 고압의 전기를 받아 저압으로 배분하는 데 필요한 각종 기기를 함에 넣어 구성된 패널이다. 내수 시장규모는 연간 1조 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변압기와 MOF(계기용변압변류기), 차단기 등 다양한 전력기기로 구성됐다.

김 의원의 발의는 제도 틀 안에서 전력기기의 교체주기를 의무화하자는 최초의 제안이란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노후 전력기기는 제도적 규제가 부재하기 때문에 지금도 건물이나 공장의 지하실과 같이 취약한 환경에 방치된 채 가동되고 있다.

개정 법률안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전기설비의 안전관리를 위하여 배전반의 권장사용기간을 30년의 범위에서 정하여 고시하여야 한다’는 게 골자다.

전기안전공사가 권장사용기간이 지난 배전반을 점검한 결과, 교체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해당 배전반의 소유자 또는 점유자에게 통지하도록 했다. 교체 비용의 50%를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지원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타임 베이스가 아니라 컨디션 베이스로 기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아 법안이 수정 발의되거나 산업부와 협의를 거쳐 내용이 보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구연한 법제화를 처음 화두로 던진 전기조합은 배전반 권장사용기간을 30년이 아니라 20년으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배전반 내구연한을 둘러싼 공론화 과정은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국민안전과 온실가스 배출 억제, 에너지 절감 등을 고려할 때 기존 노후기기 관리체계는 어떤 형태로든 수정·보완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해관계나 배경을 떠나 전력설비 수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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