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미국은 당연히 아니다. 중국도 타격이 만만치 않지만 버티고는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로만 보면 엉뚱하게도 독일이다. 유럽경제의 우등생이며 유럽에서 그 경제력이 가장 센 나라, 독일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분기 독일의 GDP 성장률은 –0.1%를 기록했다.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다면 2분기 연속이다. 보통 2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면 경기 침체로 규정된다. 성장률이 꺾어지면서, 불황에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있다. 소비심리는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고 기업경기지수는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금 마이너스 수준이다. 이건 다른 말로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지금 100만 원을 빌려줘서 10년 후에 99만 원을 받는다는 소리와 같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돈이 제값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고 그만큼 경기를 좋지 않게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금 손실로 우리나라에서 한창 소비자 피해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은행의 파생결합펀드(DLF)가 문제가 된 것도 독일 경기가 이처럼 나빠져서 채권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탓이다.

독일 정부는 독일인답게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정부의 재정적자 증가율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16조 정도다. 독일 정부가 재정지출을 이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경제가 위기상황임을 의회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지금 독일에서는 위기상황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미 독일 정부는 경기대책의 하나로 통일세를 폐지했다. 지난해 기준 독일의 통일세 규모는 우리 돈으로 25조 정도다. 사실상 그만큼 재정지원을 하는 셈이다. 납세 대상자의 90%가 절세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세계 경제의 우등생이었던 독일이 어떻게 이렇게 된 걸까. 역설적이지만 독일이 가진 강점 때문이다. 독일은 제조업이 강한 나라다. 그래서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47%가 상품과 서비스 수출에서 발생하며, 제조업이 국가 경제의 5분의 1을 책임진다. 그러니까 제조업과 수출로 경제가 유지되는 나라가 독일이다. 하지만 지난 6월 독일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 줄었다. 특히 최대 수출품목인 자동차 수출은 지난 2분기 13%나 급감했다.

가장 큰 이유는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 독일의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경제가 침체한 탓이다. 독일 자동차회사의 최대 시장은 중국이었다.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하는데, 독일 브랜드 자동차 3대 중 1대꼴로 중국에서 제조되고 있다. 중국 시장이 위축되면서 독일경제의 엔진인 자동차산업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자동차 업계의 중국 수출 부진은 독일 제조업 경기 침체의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독일의 상반기 자동차 생산은 작년에 비해 12% 감소했다.

중국의 경기하강이 가져오는 여파는 생각보다 크다. 사실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제조업이 다 어렵다. 제품 생산과 판매, 주문 등 모든 지표가 악화했다. 특히 자동차산업이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최근 제조업 경기 침체의 핵심 원인은 결국 교역량의 감소에서 비롯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글로벌 교역 규모가 줄어들면서 수출 중심인 제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독일은 트럼프가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세계 제조업의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괜찮을까.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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