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때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12월. 바로 6개월 전에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성공적으로 상륙하면서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종전 선언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서부전선을 지키기 위한 독일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12월에 히틀러의 특명을 받은 독일군이 벨기에로 진격하는 대반격을 감행했다. 벨기에의 앤트워프를 점령함으로써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할 속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군의 전세는 불리해졌고 급기야 바스토뉴에서 연합군이 포위되기에 이르렀다. 이 지역을 독일군이 점령하게 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의미 자체가 사라질 정도로 상황은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연합군 사령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의지할 수 있는 이는 조지 패튼 장군과 그 휘하의 3군단뿐이었다. 아이젠하워의 요청이 떨어지자마자 패튼 장군은 48시간 이내에 바스토뉴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였다.

3군단의 약 20만 명 군인과 200대의 탱크가 90도 각도를 틀어 북진했다. 최후의 반격을 가하는 독일군과 사투하면서, 그리고 12월의 잔인한 혹한과도 싸워가면서 160km가 넘는 거리를 밤낮으로 진격했다. 패튼 대전차 군단의 저력과 속도는 히틀러 정예부대의 허를 찌를 만큼 압도적이었다. 이들은 바스토뉴를 구원하고 서부전선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나중에 영화화될 만큼 유명한 벌지 대전투의 승리의 비결은 패튼 대전차 군단의 강인함에 있었다.

튼튼한 기초체력은 모든 작전에서 필수 조건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카이사르와 함께 한 로마군단의 주력인 중무장 보병의 행군속도를 소개해 주고 있다. 대략 40kg이 되는 무기와 식량을 지닌 채, 평상 시 행군인 이테르 유스툼에서는 5시간에 25km, 강행군인 이테르 마그눔에서는 7시간에 35km, 최강행군인 이테르 막시뭄에서는 밤낮 가리지 않고 행군한다. 바로 패튼 대전차 군단의 진격 속도가 이테르 막시뭄에 해당된다. 조그만 도시국가인 로마가 게르만에서부터 저 멀리 갈리아까지 성공적으로 원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강인함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 첨단 장비로 기계화된 현대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계는 잠을 자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전투원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근간의 체력은 그 모든 것의 필수 조건이다. 히딩크 감독이 체력훈련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일화도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다.

지금의 글로벌 경제는 무역전쟁 중에 있다. 벌지 대전투가 에너지 보급선을 둘러싸고 이루어졌듯이 오늘날에도 안정적인 에너지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끊임없이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인한 에너지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원자력을 빼놓을 수 없다. 원자로는 일단 가동되면 거의 100% 수준에서 이용될 수 있다. 원자력은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강건한 경제 체질을 갖도록 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로마군단의 최강행군인 이테르 막시뭄처럼 밤낮으로 쉬지 않고 전력을 공급한다. 유연탄과 LNG도 빠질 수 없다. 이들은 원자력 보다는 이용율이 낮지만 그래도 강행군 단계인 이테르 마그눔이다.

최근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육군에서 20km 신병 행군을 폐지하기로 했다가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한 바 있다. 전투체력 단련과 악조건을 극복하는 팀웤을 통해 얻는 긍정적인 힘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나라 에너지 전환정책이 이처럼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회적 논의와 이로 말미암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에 어쨌든 성공적인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스스로 강인함을 유약함으로 전환하는 정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OECD 기준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현저히 낮은 우리나라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확대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재생에너지이며, 재생에너지가 원자력의 대체가 될 수는 없다. 원자력 1기를 줄이기 위해 태양광을 보급한다는 식의 캠페인은 이테르 막시뭄을 감당할 수 있는 중무장의 로마군단을 경무장 보병으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이다. 패장이 택하는 전략이다. 성공하는 전술은 전진해야 할 때에는 최대속도로 완전무장하여 나가는 것이다. 패튼 장군이 택한 전술이다.

연일 글로벌 경제는 패권을 다투는 전쟁 중이다. 우리 경제가 그동안 쌓아 온 강인한 투지력을 약화시킬 게 아니라 더욱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강하게 변모해야 할 때인 것이다.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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