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제119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헌법 제23조: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제1항 본문). 이렇듯 우리 헌법은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유재산제를 경제체제의 근간으로 삼음을 천명하고 있다.

전기사업법 제33조: “전력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전력의 거래가격…은 시간대별로 전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으로 한다”(제1항). 우리 전기사업법은 전력산업 역시 전력시장이라는 자유시장경제질서에 따라 구축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세계 각국이 전력산업에서 독점체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입증한 전력시장혁명 이후, 종래 국유기업 중심의 사회주의적 독점체제는 어떠한 법적 기반조차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 전력산업계에서는 사회주의를 향한 역주행이 벌어지고 있다. 온갖 궤변과 선동으로 현인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몬 소피스트들이 아니라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모순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그에 저항하는 세력을 분쇄하기 위한 중앙독재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하에서 표현의 자유가 용납되지 않음 역시 이웃국가들에서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전력산업과 전력시장은 그간 소피스트들의 독무대와 다를 바 없었고 급기야 사회주의를 향한 실험장이 되어가고 있다. 그와 함께 법치주의(rule of law)의 원리도 무너지고 있다.

전력시장의 작동원리를 무시하는 발전자회사 정산조정계수,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도외시하는 용량계수와 SMP 결정방식, 전기사업법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비용평가세부운영규정과 비용평가위원회와 그 배후에서 사태를 조종하는 전력당국, 전기사업법 상 유일한 전력거래가격 규제방식인 vesting contract 제도의 변태적 탈법에 불과한 민간석탄발전기 정산조정계수 등등. 지금까지 전력당국의 미봉책 정도로만 여겨졌던 여러 제도들은 이제 전력시장의 사회주의화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탈바꿈하고 있다(아니라면, 제도 안에 숨겨져 있던 사회주의적 본색을 드러낸 것일 것이다).

지금 항간에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이후 전력당국이 탈석탄정책에 순응하는 몇몇 기업들에게 노후석탄발전소 폐기의 대가로 발전사업허가를 나누어 줄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만약 이러한 소문이 실현된다면, 전력시장 진입을 위한 경쟁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전력당국이 전기사업법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입맛에 따라 생산수단인 발전사업권을 배분하는 ‘배급제 전력시장’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김용균 특조위가 전력산업을 수직적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촉구한 것도 전력산업을 사회주의화하려는 시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렇듯 우리 전력산업체제의 근간인 전력시장은 이름만의 껍데기만 남겨진 채 그 정수는 사회주의체제로 대체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필시 누군가는 필자가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것 아닌가라고 코웃음 칠 것이다. 하지만,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그 누구도 나치의 집권을 예상치 못한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현실의 위선과 부조리와 부당함에 눈을 감는 것은 이를 방조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간 우리 전력당국의 권위는 전력산업계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전력산업계의 미생들인 우리 모두는 화신(化神)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한 정면 도전의 치명적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사업자들은 사업권이나 경제적 이권의 상실을 두려워한다. 공기업의 임직원은 지위 상승 또는 보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학계와 연구계의 전문가들은 신이 하사하는 명성과 권위가 사라질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우리 전력산업계의 부역, 방조 또는 묵인 없이 어찌 전력당국이 무소불위의 존재가 될 수 있었겠는가? 전력당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소소한 자기검열과 눈앞의 이익을 위해 근본적인 부조리의 해결을 미루는 처사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괴물을 만들어 버린 것 아닐까?

소크라테스가 말만 앞세우는 소피스트들의 만행에 맞서 언행일치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하여 독배를 마신 것처럼,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인 메이지유신을 이끌어낸 지방의 하급 사무라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중앙 막부의 절대 권력에 도전한 것처럼, 이제 우리 전력산업의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이 전력산업의 사회주의화에 저항할 때가 되었다!

박진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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