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마산에 처음 전기 생산한 '일한와사'…대구, 대전 등 주변지역보다 10년이나 앞서
옛 건물 양식 그대로 지금은 사택만 남아 아쉬움

마산에서 처음 전기를 만들었던 마산합포구청 뒤편의 '전기불터'.
마산에서 처음 전기를 만들었던 마산합포구청 뒤편의 '전기불터'.

지난달 초 발족한 전기신문 대학생 SNS기자단이 젊은 감각을 톡톡 살린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매달 최우수작은 지면에 게재되며 다른 우수작들도 전기신문 네이버 포스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첫 편으로 송주경 동아대학교 학생이 마산에서 밝힌 첫 전깃불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1911년 5월 23일 근대 마산 밤거리에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11년 전인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처음으로 세 개의 전등이 점등되며 사람들에게 전깃불이 공개된 지 11년 만에 마산시에 불이 들어온 것이다.

이는 훨씬 규모가 큰 대구광역시나 대전광역시보다 10년 앞선 시점이다. 지금은 옛 마산시청이었던 마산합포구청 뒤편에 ‘전기불터’ 비석이 남아 과거를 지키고 있다.

전기불터는 하늘의 은혜를 받은 좋은 항구라는 의미인 ‘천혜 양항’ 마산지역에 처음으로 전기를 만들어 보냈던 곳이다.

◆일한와사와 마산지점= 일한와사주식회사(日韓瓦斯株式會社)는 창립 이후 콜브란과 매수 협상을 벌여 전체 120만원에 한미전기의 특허와 권리 및 광무 황제의 지분을 포함한 자산과 재산을 인수하고, 50만원의 사채 계승을 조건으로 1909년 6월 24일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체결 후 일한와사에서는 1909년 7월 2일 대주주상담회와 1909년 7월 21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해 한미전기의 사업 일체 매수에 대한 주주들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정관도 개정해 상호를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日韓瓦斯電氣株式會社)로 개칭하고 영업 목적에도 전차·전등·전력 등을 추가했다.

당시 일한와사 공사 모습(오른쪽)과 완공 후 사진.
당시 일한와사 공사 모습(오른쪽)과 완공 후 사진.

마산은 러일전쟁 때 군사적 이용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일본군부가 각종 군사시설을 갖추기 시작하고, 일본인 거주자도 점차 증가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그해에는 4300명으로 증가해 5000~6000명가량이었던 한국인과 비슷한 수를 이뤘다.

이때 일본 이사회의 이사관이 마산의 전기사업을 건의, 1906년 6월 이사청의 허가를 신청했고 1907년 3월 마산지점이 설립된다.

◆사택만 남은 일한와사= 과거 마산 일본인 거주자가 머물던 지역은 현재 마산합포구 경남대학교와 댓거리 일대를 일컬으며 신마산이라 불린다.

그 외 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지역을 원마산 혹은 구마산이라고 지칭했으며 현재는 쓰지 않는다. 신마산 마산합포구청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곳인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번지 3에는 일한와사 사택이 남아 있다.

고급스러운 아치형 입구와 사택주변을 두르고 있는 돌담에서 과거 이곳에 살던 주인을 대부호로 추측해볼 수 있다.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전체적인 상태도 양호하다. 다만 근대 마산을 알게 해주는 좋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방치를 해놓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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