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폭염은 계속됐지만 높은 전력공급 예비율 덕분에 예전과 같이 여름철 절전대책에 따른 냉방시설 운영제한 등으로 찜통더위를 겪어야 하는 상황은 없었다. 오히려 미리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해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여름철 전력수급 걱정은 끝났는데도 한전 등 전력업계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한전의 상반기 공시한 영업손실은 9285억원이고, 여름철 누진제 완화로 인해 손실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다.

원료비 상승 등 공급원가 증가로 인한 영업손실의 근본 해결책은 전기요금 조정이지만, 내년 총선 등 정치적 관점에서 쟁점이 될 수 있으므로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를 사용하고 그 대가로 지급하는 비용은 ‘전기요금’이 맞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전기세(電氣稅)’와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석유나 가스처럼 개별소비세가 부과되지 않지만 국민이 세금처럼 느끼는 것은 한전이 전기를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없이 일방적으로 요금을 부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가정용 누진제처럼 전기요금의 구조나 요금 결정을 정부에서 관여하기 때문에 국민은 국회 등을 통해 특정 전기요금을 낮춰달라고 요구해왔다. 정부가 이를 수용하기도 하면서 세금 같은 인상을 줘온 것도 사실이다. 이는 전기요금에 시장원리 이외에 정책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 생활의 필수품이자 공공재 성격을 지닌 전기도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사용한 만큼 적정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세금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로서는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한전이 흡수하고 인상하지 않기를 원한다. 한전이 적정 공급원가 이하로 전기를 계속 판매해 적자가 누적되는 경우에는 한전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 한전의 적자 누적으로 투자재원이 부족해지면, 송배전 등 전력공급설비에 대한 유지보수 및 투자가 감소하여 전력공급 불안이나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

둘째는 한전의 적자는 조정계수를 통해 발전사의 이익도 감소시켜 발전설비의 유지보수나 시설투자의 축소가 불가피해 전력공급 안정성을 저해한다. 또 차입 등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게 되어 공급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인상의 요인이 된다. 한전이나 발전사는 많은 전문 중소기업 등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어 전기공사 등 발주물량의 감소나 기술개발의 축소되면 한전을 중심으로 한 전력생태계가 취약해지고 관련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증가될 수 있다.

셋째, 한전이 적정가격 이하로 전력을 공급하는 경우, 가격의 왜곡으로 인해 전기에너지 과소비나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고, 에너지원 간의 합리적 배분이나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다. 공급손실을 추후 요금인상으로 보전하는 경우 시차로 인해 인상요인을 미래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교차 보조가 발생하여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

전기요금은 시장기능에 따라 공급원가를 반영해 결정하고, 정치적 요인이 개입하지 않도록 전기요금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경 등 외부비용의 반영이나 에너지복지 등 정책요인은 사회적 합의나 정책과정을 거쳐 제도화해서 반영해야 한다.

유가나 가스요금, 지역난방 열요금 제도에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바 있다. 그 후 유가나 가스요금 조정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적어졌고, 소비자도 급격한 변동이 아니면 순응하고 있다. 이러한 연료비 연동제를 전기요금에도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기사업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원료비 변동은 주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면 전기요금 조정의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현재는 전기요금을 조정하려면 먼저 한전이 정부, 국회, 언론 등에 요금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요금인상의 긴급성과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시기나 수준을 결정한다. 전기요금 결정 프로세스도 복잡해 적시에 결정하기도 어렵고 그에 따른 정책비용도 많이 든다.

따라서 전기요금 구조나 결정방법을 전문적인 독립규제기관에 맡기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최소화되도록 합리적인 규제프로세스를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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