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성 전북대 독서문화연구소 간사
한만성 전북대 독서문화연구소 간사

전주 시내 편의점에서 종이신문 판매가 중단된 지도 한 계절이 되었다. 종이신문 열독률(閱讀率)이 17.7%(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에 불과하다는 조사를 보면, 앞으로도 신문 가판대 구경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듯하다. 스마트폰이 통합 미디어로 등극하면서 뉴스 읽기뿐만 아니라 독서 습관 또한 크게 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스마트폰에 함몰되어 있는 형편이다. 반지성주의의 징후라 한 만하다.

뉴스 소비가 검색 위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떤 함의가 있을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확정편향성이 강해진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종이 신문을 펼쳐 읽으며 눈길 가는 곳으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다른 논조를 띤 신문을 찾아 같은 사안에 대한 다른 해석을 비교해보는 독자들은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빠른 속도와 결과를 우선하는 정보의 시대에서 앞의 예와 같은 정신적 여유로움은 사치로 취급될 수 있다. 이는 곧 전문가적인 직업인이 주류인 시대에서 시민사회의 보편적 관심사에 충실한 인문 교양인이 갈수록 감소함을 뜻한다. 인문 교양은 다소 느슨하고 긴 호흡으로 사색하며 읽어내는 독서로부터 가장 크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과학기술이 자본주의 경제에 크게 봉사한다면, 인문 교양은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한다. 현재의 반지성주의 징후는 민주주의 정치 상황에 저해요소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은 더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하는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 성장에 치중해야 하는 시점인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녹색평론》의 발간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생태사상가 김종철은 올해 출간한 책(《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녹색평론사, 2019) 속에서 단연코 더 많은 민주주의가 경제성장보다 필요하다는 답변을 풍부한 예시와 두터운 논증으로 개진하고 있다. 원전과 관련한 일부를 소개한다.

민주정부를 세우기 위한 한국인들의 노력이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으로부터 시작되어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보는 저자는, 원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시민의 참여와 합의에 따르는 ‘숙의민주주의’가 실행된 점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오늘날 현대인들이 “보다 많은 물자와 에너지의 생산 소비가 계속돼야만 자유롭고 풍요로운 선진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미신”에 붙들린 채 살고 있음을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지속 불가능성을 들어 통렬하게 비판한다. 인간의 삶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풍부한 전력이나 물자가 아니라 풍요로운 인간관계라며 이러한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속성을 지닌 문명이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예측할 수 있듯, 저자에게 원전 시스템은 “자연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한 지식이 창조해냈기 때문에 처치 불가능한 폐기물을 남길 수밖에 없으며, 단기적 이윤추구 외에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는 자본의 논리와 자기팽창 욕망에 사로잡힌 국가의 논리, 그리고 근대적 과학기술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끔찍한 요괴”로까지 폄하된다. 이 같은 주장은 후쿠시마, 체르노빌의 재앙으로 뒷받침되며, 원전은 “현재의 풍부한 전력을 얻어서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 미래세대의 생존과 생활의 토대를 파괴하는 가장 악질적인 시스템”이 되어 버린다. 앞선 인용에서 보듯, 생태환경과 기후변화에 남달리 민감한 저자의 주장이 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지난 10여년에 걸쳐 발언한 글들의 이성적인 논증이,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문학적 상상력과 잘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의 존재 방식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사고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할 줄 아는 습관은 인문교양의 핵심 능력이다. 오늘날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이 이 같은 능력을 충분히 길러주고 있느냐는 문제는 별도로 논의해 볼 만한 주제이다. 우선 이 지면에서는, 전력 최대수요 1억kW 시대를 코앞에 둔 상항에서 과학 전문가들이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 등을 일반 시민들에게 논변으로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질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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