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교수의 금요아침) 피라미드, 석조산업 혁명
작성 : 2019년 08월 21일(수) 08:15
게시 : 2019년 08월 22일(목)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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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이라면 당연히 피라미드다. 그리고 피라미드라면 거대하고 완벽한 삼각형 세 개가 나란히 서있는 기자의 피라미드일 것이다. 물론이다.
그러나 놀라운 피라미드는, 가장 허접해 보이는 피라미드다. 파라오 조세르(DJoser)가 지은 최초의 피라미드인데, 돌을 마치 흙벽돌처럼 잘게 잘라 쌓았기에 일부는 무너질 듯도 하여, 아무튼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막상 가깝게 보면, 이 피라미드가 진정 피라미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조세르는 기원전 2648년에 피라미드를 완성했다. 우리가 아는 그 우아하고 완벽한 삼각 피라미드가 아닌 투박한 돌을 벽돌삼아 쌓아올린 소위 계단식 피라미드(Step-Pyramid)다. 조세르 이전에는 파라오를 지하 묘실을 만들어 보존하고, 진흙벽돌로 만든 슬라브로 덮었다. 이를 마스터바라 하는데, 말하자면 흙벽돌로 만든 고인돌이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석회석 벽돌과 모르타르를 썼다. 마스터바 재료를 돌로 바꾼 간단한 아이디어였다. 대략 높이 10미터에 밑변은 120미터 정도인 슬라브 한 층을 세웠다. 별반 다를 리 없을 것으로 여겼던 건축가는 약간 흥분했다. 이 허접하지만 거대한 돌무더기 구조물을 떡 버티게 세우니 경이로운 기분이 들었다. 건축가는 고무되어 같은 높이로 조금 작게 만들어 이 층을 올리게 된다. 문명사상 최초의 이층이 성공했다. 그리고 건축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따라 건축 기술도 한 층 한 층 하늘로 향했다. 6층이 됐다. 기원전 2648년의 일이다. 당대 어디에도 없는 초고층 빌딩이 완성됐다. 이를 오를라치면 새로운 통일 이집트의 신도시이자 경제 심장인 멤피스를 굽어볼 수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은 아니었다.
이 피라미드를 보면, 당시 건축가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새로운 재료를 썼지만 기존 기술을 버리지 못한 과도기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기둥을 돌로 만들었는데, 디자인은 여전히 파피루스를 다발로 묶은 갈대 기둥 모습이다. 그리고 석재 일부가 손상돼 수리한 곳을 보면 마치 나무 벽을 다루듯이 했다. 전체를 교체한 것이 아니라 부분만 잘라 때운 곳이 보인다. 돌도 벽돌처럼 작게 만들었다. 후대의 제대로 된 석재는 크게 만들어 무게가 수 십t에 이른다.
조세르를 경계에 넘어간 혁신자로 보는 이유가 이것이다. 과거와 새로운 것이 섞인 이 어정쩡함이 바로 흙벽돌과 갈대로 도시를 짓다가 처음 석조 기술을 사용한 증거인 것이다. 도구와 무기를 돌로 만들면 석기시대(Stone Age)라 하지만, 집과 도시를 돌로 세우면 석조문명(Stone Civilization)이라 불러야 한다. 도시가 문명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술과 산업으로 석조문명을 탄생시킨 이 장면을 우리는 마땅히 석조산업 혁명이라 불러야 한다. 말하자면 이집트는 기원전 2648년에 석조산업 혁명을 해낸 것이다. 이 혁명은 이후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세계 전체로 퍼져 간다. 이때부터 산업혁명 전까지 문명을 지배한 것은 석조산업이었다. 그리고 품질이 좋은 돌은 지금의 석유와 같았다. 하긴 지금까지도 도시는 돌로 만든다. 콘크리트도 돌이다.
이집트의 석조산업 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당시의 기술과 산업을 돌이켜봐야 한다. 아직 후기 신석기시대였던 것이다. 석기시대 최고의 도구로 돌도끼가 있다. 돌도끼는 돌망치와 다른데, 긴 자루 끝에 단단한 돌을 달아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파괴력이 증폭된다. 지름 1m의 나무를 잘라 통나무배를 만들자면, 돌망치로는 불가능하다. 돌도끼라야 가능한데 대략 3만 5000번을 찍으면 한 번 자를 수 있다(이것을 알면 통나무배는 신석기 시대의 순양함이다).
그런데 이집트는 피라미드용 석재를 돌망치로 캐고 다듬어 만들었다. 쓸모없는 돌에 엄청난 노동을 더해 최첨단 상품으로 만들었다. 당시의 이집트 사람들은 돌 벽돌을 휴대폰보다 더 원했고, 귀하게 여겼으며 비싸게 샀을 것이다. 돌로 집을 짓고 벽을 장식해야 부자가 될 테니.
조세르의 피라미드에만 최소 6000만개 이상의 석회암 벽돌을 사용했다. 20년 동안 매년 300만개 이상의 석재를 생산하고 소비했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요고, 신산업이다. 더구나 당시 인구는 150만명 정도였다. 상상이 가는가? 돌산업이 이집트 사람들을 어떻게 부자로 만들었을 지를. 가치가 없던 석회암과 화강암이 부의 원천이 됐다. 당연히 석재공장을 운영하면 부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스완의 화강암은 배에 실려 800km 떨어진 멤피스에 도착했다. 사암이나 석회암보다 비쌌다. 새로운 장식 기술, 새로운 건축 양식이 발명된다. 창업의 기회도, 공장의 일자리도 넘쳤다. 비옥한 나일 삼각지의 잉여 농산물은 고급 석재와 교환된다. 농부들이 열심히 일하게 된다. 집들이 돌로 지어지고, 도시와 산업이 피라미드 방식으로 관리되면, 이것이 제국의 탄생이다.
그래서 이집트라면 피라미드다. 나일강이 제국의 핏줄이라면 피라미드는 뼈가 된다. 당대 어떤 문명도 넘보지 못할 만큼 화려했던 이집트를 곧 세우고, 성장시키고 부양했던 것이 피라미드, 곧 석조산업 혁명이었다.
그리고 이제 알겠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파라오가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는 파라오에게 이집트 전체가 신의 권력을 부여했던 것이다. 거대한 피라미드는 파라오가 제국의 경제를 부양하는 가장 중요한 실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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