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안전관리자 역할 재정립할 ‘전기안전법’ 국회서 계류 중

지난 4일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노후 변압기 문제로 인한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이 지역은 지난 7월 말부터 이미 3차례 아파트 정전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곳이다.

업계는 올해 폭염과 함께 전국에서 아파트 정전 현상이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그동안 노후전기설비 관리 등 미흡한 안전투자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국민들의 전기안전 확보를 위해 추진 중인 긴급출동복구 서비스인 에버서비스 출동현황을 살폈을 때 지난해 출동건수는 총 424건이다. 이 가운데 아파트가 197건으로 46%를 차지했고, 국가주요시설이 70건(17%), 기타 157건(37%) 수준이었다.

정전사고의 절반 가까이가 아파트에서 나타나고 있다. 계절별로 들여다봤을 때 더위가 심해지는 8월이 84건으로 가장 빈번했다는 게 전기안전공사 측의 설명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폭염 등으로 인한 냉방부하가 크게 증가하면서 여름철 전기안전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 이미 지난해 여름 113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전력설비 노후화로 인한 아파트 정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7~8월 사이에 전국에서 150건 이상의 아파트 정전사고가 발생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 같은 대가를 치르고도 여전히 하절기 정전대책은 취약한 형국이라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먼저 1000kW 이상의 전기설비를 보유한 아파트 단지에서 선임해야 하는 상주 전기안전관리자들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노후 변압기 등 전기설비 개선 등 조치를 요구할 경우 전기안전관리자가 해임될 위험이 있다고 업계 한 관계자는 전했다. 전기설비 개선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전기안전관리법 제정안에는 전기안전관리자들의 보호 대책이 담겼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제정안에는 전기안전관리자가 전기설비를 점검, 기술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할 경우 전기사업자와 자가용 전기설비 소유자 또는 점유자에게 해당 설비의 수리나 개조, 이전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조치요구를 받은 사업자 혹은 소유자는 지체 없이 이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도 붙었다. 이 같은 조치요구를 이유로 관리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통해 관리자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된 상태로 최근 임시회에서 상정까지는 됐지만, 여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업계 이견을 좁히기 위한 공청회 등 과정을 거치다 보면 연내 제정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전기안전 분야에서 가장 대표 격인 전기안전공사의 역할도 제한적이다.

전기안전공사가 아파트 전기설비를 검사할 경우 노후 설비나 불량 설비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장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더라도 설비 개선에 대한 권고만 할 뿐 단전이나 행정조치를 이행할 수 없다.

하절기 전기안전의 필요에 대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지만 전기안전에 대한 정책적인 뒷받침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나 고양시와 같은 지자체가 아파트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예산의 한계와 아파트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큰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전기안전은 전기사업법에서 다루고 있는데 한 법안 내에서 산업 진흥과 안전이라는 규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라며 “여전히 국회에서는 전기안전관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계속해서 지적되는데 정책적으로 나아지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고양=연합뉴스) 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한 아파트에 이틀 연속 정전이 발생해 집마다 불이 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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