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재고관리 운영 허점 드러나…관리 시스템 부재 내부 감사 통해 지적…

전기사용량을 검침하는 전력량계 재고량이 200만대에 육박하면서 한전의 기자재 재고관리 운영에 허점이 드러났다.

지난 6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이 자체 감사를 통해 연간 수요물량을 넘어서는 전자식 전력량계 재고물량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지난해 1000억원(추정가격) 규모의 연간단가 입찰을 진행하는 등 전반적인 재고관리에 맹점을 드러냈다.

한전은 전기요금을 제때 인상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 비용절감 차원에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자재 공사 발주를 최대한 자제해 왔다. 이 때문에 기자재 재고현황 파악은 비용절감의 선결조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재고 파악에 나선 이후 전력량계 재고량은 점점 늘더니 지난 5월 기준으로 약 190만대까지 치솟았다.

실제로 한전이 5월 기준으로 보유 중인 주택용(Ea타입) 전력량계는 120만대가량이며, 상가·공장용(G타입) 전력량계는 단상 50만대, 3상 23만대 정도로 파악된다. 모두 합치면 193만대에 이른다. 이는 한전이 지난해 10월 단가계약을 통해 구매하겠다고 공고한 연간 수요물량(183만대)을 넘어서는 수치다.

비상선포 이후 재고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1000억원에 이르는 전력량계 연간단가 입찰을 시행한 셈이다. 이에 따라 한전은 경영관리 측면에서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재고가 넘쳐나자 한전은 지난해 경쟁입찰을 통해 단가계약을 맺은 협력사들로부터 올 상반기까지 전체 계약물량의 20% 정도만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전은 고압고객용 전자식 전력량계도 상당수 미리 사둔 것으로 알려졌다. 고압고객용의 경우 약 2년치에 해당하는 물량이 창고에 쌓여 있어 2017년부터 연간단가 입찰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리 구매한 전력량계 중 검정기간이 도래한 제품이 있어 일부는 폐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지금 쌓여있는 재고는 내년까지 소진해야 한다. 2021년부터는 보안이 적용된 새로운 계량기가 적용될 방침이라 남아 있는 재고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이 같은 한전의 재고관리 실패는 곧바로 협력사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선 올 하반기로 예상된 주택용과 상가·공장용 전력량계의 연간단가 입찰은 진행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약 190만대에 이르는 재고를 소진하지 않는 한 영업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 추가구매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올해가 기존 모델의 마지막 연간단가 입찰이라 이대로 해를 넘긴다면 약 50개 협력사들은 내년 말까지 1년여간 공장을 놀리게 될 판이다. 연간단가 입찰은 협력사들에 ‘1년 농사’일 정도로 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올해 전력량계 시장이 ‘개점휴업’ 상태에 빠질 경우 업체들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한전시장을 기대하고 나주 에너지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존길 모색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이와 관련 한전은 현재 자재운영 TF를 구성해 재고 소진 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정확한 전력량계 수요량을 예측해 추가구매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체들은 한전의 전체 계약물량을 기반으로 최저가 가격을 책정, 지난해 연간단가 경쟁입찰에 참여했는데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체의 20% 정도만 구매해갔다”며 “연간단가 물량이 추정치라지만 갑자기 구매량을 줄이면 전체 계약물량을 신뢰하고 가격을 결정한 기업은 손해만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10년간 한전이 계약물량의 80% 이하로 구매한 사례가 없는데 남은 계약기간 동안 최저치인 80%를 달성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신뢰성 있는 재고관리 시스템을 안착시켜 앞으로 매월 균등 구매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