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EU는 LNG시장 구조개선을 위해 수년째 협력관계 지속
•에너지전환시대 에너지주권 확보를 위해서는 국제협력을 통한 LNG시장 구조개선이 필수적

2019년 7월 9일 도쿄의 아침은 8월초의 서울만큼이나 무더웠다. 아내로부터 자주 길치라고 놀림을 받는 필자가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도쿄의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구글맵 덕택이었다. 셔츠에 흠뻑 땀을 적셔가며 도착한 곳은 도쿄 스미다강 하구에 자리잡은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 그곳의 컨퍼런스룸은 호텔 회의실과 같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대학의 강의실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LNG시장의 변화를 도모하는 아시아와 유럽 각국의 가스 관계자들의 열기로 바깥보다 더 뜨거웠다.

필자가 5월말 일본 유수의 로펌인 니시무라 아사히 법률사무소의 콘노 히로야쓰 변호사로부터 요청을 받아 참석한 곳은, 일본 경제산업성과 EU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주최하는 LNG워크숍이었다. 주요 LNG 소비국인 일본과 EU는2017년 7월 유동적이고 유연하며 투명한 글로벌 LNG시장(Liquid, Flexible and Transparent Global Liquefied Natural Gas Market)의 창설을 목표로 협력각서를 체결하였고 이후 그러한 협력의 일환으로 수회 워크숍을 개최하여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이 5회차였다.

이번 LNG워크숍의 토의 주제는, 전통적인 LNG도입계약에 따라 이루어져 왔던 목적지 제한(destination restrictions) 및 목적지 전환에 따른 이익공유(profit sharing in cargo diversions)가 각국 공정거래법 상 위법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1세션에서는 EU집행위원회 담당자는 LNG가 유럽의 가스공급원 다변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발표한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담당자는 일부 관행적인 LNG 계약조항이 일본 독점금지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 6월 「액화천연가스의 거래실태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목적지제한조항이 구매자의 아시아 내지 글로벌 LNG시장에서의 재판매 기회를 제한하는 시장봉쇄효과(market foreclosure effects)를 가지며, 특히 FOB 계약의 경우 선적지에서 LNG의 소유권과 위험이 구매자에게 이전되는 이상 목적지를 제한할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일본 독점금지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DES 계약의 경우에도 목적지 전환에 따른 이익분배비율이 불합리하게 판매자에게 유리할 경우 구매자의 재판매를 저해하는 효과가 있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판단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보다 상세한 내용은 에너지경제연구원,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LNG 거래실태 조사 내용 및 시사점”, 세계에너지시장 인사이트 제17-26호, 2017. 7. 31. 참조). 다음으로, 유럽 로펌의 변호사는 유럽집행위원회가 2000년대부터 목적지 제한을 철폐하기 위하여 Gazprom, Sonatrach 등 판매국의 국영기업들을 상대로 벌여온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내용을 발표하였다. 2018년 6월부터는 EU집행위원회가 유럽 LNG 수입물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카타르페트롤리엄(Qatar Petroleum)을 상대로 카고의 목적지 전환을 제한하는 계약조항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2세션은 아시아의 주요 LNG소비국인 중국, 한국, 대만, 인도와 일본의 로펌 변호사들이 위와 같은 전통적 LNG계약 조항들이 각국의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시간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패널리스트들은 그러한 조항들이 해당국의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열린 3세션에서는 한국가스공사의 최중식 변호사를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가스회사 관계자들이 상업적, 실무적 관점에서 목적지제한조항과 불합리한 이익공유조항의 폐지 필요성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리고, 4세션에서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의 하시모토 히로시씨가 워크숍에서의 논의내용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워크샵을 마무리하였다.

그날 저녁 네트워킹디너를 통해 일본, 대만, 유럽 각국의 가스기업 내지 연구소 관계자들과 한담을 나눈 후, 도쿄 도심지의 야경도 관광할 겸 이곳저곳 정처 없는 산책을 하다가 어느덧 일본의 관가인 가스미가세키에 이르렀다. 경제산업성 건물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꽤 늦은 밤이었지만 불 꺼진 층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발표된 수출규제 외에 우리나라에 대한 또다른 압박수단을 꾀하고 있는 걸까? 과연 우리나라와 주변국 간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던 구한말의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마음이 착잡하고 우려가 들어 한 동안 그곳을 응시하였다.

워크숍 중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경제산업성 관료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천연가스 부문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EU집행위원회의 관료 또한 EU는 미국과 무역관계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에너지분야에서는 협력관계에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도 일본과 EU의 LNG시장 구조개선 노력에 적극 동참해 주기를 희망하였다. 국제관계란 그런 것일 것이다. 비록 과거의 앙금이나 현재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더라도, 더 큰 차원의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상호 인내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장기 생존전략일지 모른다.

일본과 EU가 국제협력을 통해 LNG시장을 변화시키려는 이유 또한 국익 증진을 위해서일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발전소 가동중단의 영향으로 LNG발전의 비중이 40%를 넘어버렸고, 유럽은 역내 가스 생산이 줄어 러시아에 대한 가스공급 의존도가 높아져 감에 따라 LNG가 가스공급원 다변화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기후변화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을 높이려는 노력 또한 천연가스의 중요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산업성과 EU집행위원회는 종래의 LNG프로젝트 개발모델을 바탕으로 판매자에게 유리하게 형성돼 있는 LNG시장의 구조와 계약관행을 하루빨리 구매자에게 유리하도록 변모시켜야 할 절박한 필요를 느꼈으리라. 2000년대 유럽이 공정거래법이라는 법적 수단을 적극 활용해 전력시장과 가스시장 자유화에 저항하려는 시도를 척결하였듯이, 이제 일본과 유럽은 LNG 판매국에 대항해 국제 LNG시장의 구습을 타파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에너지자원 보유국과 소비국 사이에 에너지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21세기식 그레이트 게임일 것이다.

지난 세기 에너지생산국은 자원민족주의의 기치 하에 에너지자원의 국유화와 OPEC과 같은 국제카르텔을 통해 서구열강의 석유기업으로부터 에너지주권을 쟁취하였다. 이번 세기 에너지소비국은 안정적 에너지수급을 위해 소수의 에너지생산국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에너지시장의 수급과 가격을 임의로 좌우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에너지주권을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에너지생산국과 에너지소비국 간 에너지주권의 충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국가의 의자와 역량으로 쉽게 해결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여러 에너지소비국 간 국제협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가 LNG시장의 유동성, 유연성과 투명성 확립을 위한 국제협력에 적극 참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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