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백 본지 고문
유연백 본지 고문

정부는 공공문제를 해결하거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국민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각종 정책을 연일 쏟아내며 정책의 실패나 부실정책을 방지하고 정책의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결정권자의 고민은 본질적인 문제해결이나 정책에 대한 만족도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양질의 정책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면서 다른 정책과 조화를 이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고품질 정책은 무엇보다도 문제의 현장과 정책 대안의 정합성이 높아야 한다. 높은 정합성은 산업 현장과의 소통과 공감이 필수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거의 모든 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한 이후 산업 현장과의 소통과 교류가 물리적으로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소위 ‘김영란법’ 시행 이후 규제와 오해의 우려 때문에 소통을 위한 만남을 주저하게 되면서 정책의 품질이 저하되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

규제수단이 적은 산업부는 현장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현장 감각을 갖고 설득력이 높은 정책대안을 만들어 왔는데, 이런 전통적 강점이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책 관련 이해관계자는 종전과는 달리 정부보다는 국회 등을 통해 더 많은 정책을 이슈화하고 있다.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 사무관보다 국회 보좌관 설득이 더 효과적이라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반대급부가 발생한다. 이해관계자가 제기하는 현안 중심으로 정책대응이 이뤄지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돌출되기도 한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책의 품질이나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단편적인 정책으로 하나의 현안은 해결할지 몰라도 다른 정책과 상충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정책의 딜레마다.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과 김영란법 시행 등에 따른 제약요인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문제해결과 목표달성을 위한 양질의 정책대안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정부가 산업 현장과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정책과 현장 사이의 틈새를 좁혀 나가야 한다.

특히 정책실무자가 주도적으로 산업현장을 방문해 관계자를 만나 소통하고 체감할 기회가 많아야 한다. 담당별로 산업계와 정례모임을 만들고, 모임의 결과를 공유해 정부와 업계와의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기업에 부담을 주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고 정책실무자가 당당하게 소통을 주도할 수 있도록 소통 비용도 예산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책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정책과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가령 에너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환경, 산업, 재정, 안보, 건설, 수송, 복지 등 다른 정책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관련 정책과의 조화나 우선순위가 더욱 중요해졌지만 현실에서는 접점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관련 정책의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수용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에 있어 중장기 에너지기본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계획수립과 시행과정에서 관련 정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요구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정책과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산업이나 에너지 정책을 마련할 때에는 다른 분야와의 소통과 이해를 위한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정책대안을 마련할 때에도 규제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처럼 주요 정책과의 상호영향 관계를 분석해 정책 결정이나 조정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책과 현장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문제해결은 어렵고, 정책의 품질이 낮으면 국민의 ‘삶의 질’이 낮아진다. 서울과 세종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가 정책과 현장 사이의 거리가 되지 않도록 정부의 다양한 소통방법의 모색과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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