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시 대통령 시절 이른바 ‘악의 축’을 기억하시는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란과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그때 거명됐던 세 나라중 이라크는 그 후 미국과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고, 북한과 이란은 그대로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두 나라를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워낙 큰 이슈여서 약간 소홀하게 대접받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긴장관계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시작은 지난해 5월,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란과의 핵협정에서 탈퇴하면서 이란에 대한 고강도 제재가 다시 시작됐다. 이란도 발끈해서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전쟁 불사를 선포했다. 올해 4월에는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5월에는 미국이 이란 발 위협징후를 포착했다며 항모전단과 폭격기를 급파했다. 3일 후,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4척이 공격을 받았고 6월에 또 유조선 2척이 추가로 피격됐다. 이란은 유조선 공격을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을 의심했고 이란의 원유수출을 전면 봉쇄했다. 결국 이란은 핵개발 재개를 선언했다. 6월 말에는 정말 전쟁 직전까지 갔다. 이란이 미국 드론을 격추하자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습을 명령했다가 전투기 출격 10분 전 취소했다. 미국은 대신 이란의 최고지도자를 제재대상 명단에 추가했고 이란은 전략적 인내의 끝을 공표했다. 이달 초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전쟁 대비 착수를 알렸다.

이 정도면 전쟁이 곧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악화될 대로 악화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쟁까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내심은 그럴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전쟁은 돈이 워낙 많이 든다. 공습을 포기한 것도 아마 전쟁을 시작하면 짊어져야할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란은 탄도미사일 강국이고 이라크보다 강한 나라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란도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긴장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이란은 아직 미국인을 직접 공격한 적이 없다. 물론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적인 군사 충돌의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돌파구를 찾기는 어렵다. 경제 제재로 이란에는 이미 의약품 부족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란은 유럽의 중재를 기대한다고 하지만 어려울 것이다. 원래 이란 핵 협정은 관련 국가들이 10여 년을 끈 힘든 협상 끝에 어렵게 타협한 결과였다. 따지고 보면 이란이 핵협정을 위반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이란 핵협정 파기를 약속했었다. 오바마 정부의 실패작으로 너무 약한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반감은 사실 뿌리가 깊다. 1979년 미국의 외교관과 국민 52명이 억류됐던 대사관 인질사태를 아직도 많은 미국 사람들이 기억한다. 친이스라엘 그룹의 압력도 있었을 것이다. 중동의 패자 위치를 놓고 겨루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이 싫은 건 마찬가지다.

핵문제를 똑같이 갖고 있는데 북한과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은 이미 핵을 갖고 있는 반면 이란은 아직 핵보유국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북한도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파기를 지켜보면서 생각하는 게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란의 오랜 우방국이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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