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 가면 자연스럽게 인류 문명을 돌아보게 된다. 고대 이집트가 얼마나 빛났던가를 보여주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은 그것이 무려 오천년 전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경이로움이 된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즈음에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세우고 있었으니까. 이집트는 거대했다. 문명사에 등장하는 거대한 것 대부분은 이집트로부터 비롯된다. 짧은 여행 동안 보게 되는 파라오의 무덤과 유물, 장제전, 피라미드 등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최근 다녀온 여행에서 특이한 것을 하나 보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가 남긴 기록 곳곳에 배(선박)가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 산다는 것은 나일강에서 사는 것이었으니, 생업과 산업에서 배가 많이 보일 수 있겠으나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것도, 낮과 밤을 오가는 것도 배로 한다면, 이집트는 배로 이룬 제국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집트는 선박을 발명해 조선산업과 하운 물류(河運 物流) 경제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피라미드, 석조 산업혁명 그리고 제국 체계 등도 그 중심에는 배가 있다.

하긴 이집트인이 믿는 신화에서 이집트란 나일강이 흐르는 곳이고, 이집트인이란 나일강 물을 마시는 사람이라 했다. 나일강이 흐르는 곳이란 배로 통행하고 교류할 수 있는 나일강 영역이라는 뜻이다. 이집트 북쪽 대서양과 남쪽 사막은 북풍을 만든다. 돛은 펼치면 나일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올라갈 수 있고, 내리면 강의 흐름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이런 나일강의 흐름과 바람이 이집트 전역의 도시들을 묶는 초고속 통신망과 초고속 교통망이 됐다. 이집트의 도시들은 홀로 존재하며 부양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던 당대의 다른 도시들과 달랐다. 나일강의 도시는 서로 연결돼 교류하는 Connected City였다. 나일강이 있어 각각의 도시가 나름의 장점을 살려 특화된 생산과 소비를 담당했다. 이집트에서는 삶과 앎이 하나로 묶이고 동시적일 수 있었다. 당연히 당대의 어떤 도시보다 강력했을 것이다. 홀로 있는 도시는 촌락이지만 연결된 도시는 제국을 이룬다.

이 점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던 이집트 이전의 도시들과 다른 점이다. 길가메시가 살았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은 비록 수 천 년을 앞서 있었으나, 독립된 점이었고 수명도 짧았다. 이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때문이다. 터키의 높은 고원지대에서 발원한 두 강은 남쪽으로 급하게 흐르고,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가 있던 영역은 북위 30도와 40도 사이로 우리 한반도와 유사하게 대부분의 바람은 북쪽에서 온다. 무엇보다 메소포타미아를 흐르던 두 강은 변덕스럽게 옮겨 다녔고, 물길 곧 도시의 젖줄이 사라지면 도시도 사라지곤 했다. 메소포타미아가 도시를 먼저 낳았으나 제국으로 키우지 못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이집트가 만든 배는 선박이다. 배라 하면 넓게는 물 위를 통행하는 것들을 총칭하지만, 뗏목은 배라 하지 않는다. 길이가 짧은 소형선은 주(舟)라 하고,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된다. 큰 배를 선박(船舶)이라 하는데, ‘선(船)’이라는 글자는 흐르는 물(沿(연)과 같은 㕣(연)이 있다)을 따라 오가는 배, 즉 돛이나 노를 가진 것을 뜻하고, ‘박(舶)’은 거선(巨船)을 의미한다. 영어에서는 ship이 대형선을 의미하고, vessel은 용기(容器)라는 뜻으로 크고 작은 모든 배를 말한다. 그러므로 돛과 노를 가지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큰 배가 돼야 선박(船舶)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선박을 최초로 만든 것이 이집트다. 기원전 5천 년, 하이집트는 나일강 하구에서 파피루스(papyrus)를 엮어 ‘갈대배’를 만들었다. 돛을 달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상이집트는 이 갈대배를 개량해 돛을 달아 ‘선박’으로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지정학적으로 나일강의 대부분을 오가야 했을 상이집트에게는 돛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집트의 조선기술과 하운 물류 기술은 상이집트가 하이집트를 정복하고 통일을 이룬 기원전 3150년 이전에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통일 이후 화강암이 없는 하이집트 지역에 세워진 수많은 대형 화강암 건축이 증거다.

돛을 갖춘 선박이 있으면 나일강을 오갈 수 있어 상이집트 지역인 아스완과 에드푸, 룩소르에서 생산되는 경질의 고품질 화강암을 멤피스, 사카라 등과 같은 하류의 제국 도시로 팔 수 있다. 하류에서 나는 풍부한 농산물은 석재산업 단지인 상류 지역에 공급됐을 것이다. 상류 시장과의 연결이 있어 나일 삼각지의 농부는 더 열심히 일한다. 팔 수 있으니 잉여를 생산하는 것이다. 하류에 만들어지는 도시에 연결되면 상류에 있는 화강암 돌산도 도시를 만드는 건축 재료, 즉 고부가가치 상품이 된다. 제국의 곳곳에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창출했을 것이다.

또한, 나일강의 선박은 사막으로 이루어진 이집트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상품과 소식을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이다. 빠르고 강력한 체계를 갖춘 군대를 가진 상이집트가 통일을 이룬 주체가 된 것은 당연하다. 4000년 전의 이집트 선박은 길이 23m, 무게 250t에 이르는 화강암 덩어리인 오벨리스크를 실어 날랐다. 배 한 척이면 2000마리의 낙타로 세 달 걸리는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니 선박을 발명한 후의 나일강은 그 전과 다른 나일강이다. 선박이라는 도구가 더해져서야 비로소 나일강은 상류와 하류, 양면시장을 연결하는 제국 플랫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일강은 5000년 전에 있었던 ‘아마존 플랫폼’이다. 이집트는 플랫폼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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