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난 4일부터 비메모리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일부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7%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로써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본의 3대 수출 규제 품목 가운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는 93.7%, 포토레지스트는 91.9%, 고순도 불화수소인 에칭가스는 43.9%가 일본산이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분야도 반도체 만큼 일본 의존도가 높지는 않치만 수출 규제가 장기화 될 경우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배터리 4대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의 일본 의존도는 그리 높지 않다. 다만 4대 소재를 제외한 일부 원료, 첨가제, 설비 등은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수출제재 기간이 길어진다면 피해를 예단할 수 없다. 전해액의 원료가 되는 리튬염과 전해액 첨가제, 양극재와 음극재를 접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고품질 바인더, 동박 제조에 쓰이는 설비, 알루미늄 파이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해액 첨가제는 특히 기술 특허를 일본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고, 알루미늄 파우치는 일본의 DNP와 쇼와덴코가 세계 점유율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미래유망 산업으로 분류되는 로봇산업도 문제는 심각하다. 국내 로봇 핵심부품인 구동부품은 일본기업이 90%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부품연구원의 국내 로봇 부품 국산화율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로봇제품의 해외부품 의존도가 무려 59% 수준이며, 최근 3년간 수출액 대비 수입액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우리나라 미래 성장동력이 될 첨단산업이 부품 소재 분야 기술 자립이 요원하다. 미래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분야의 목줄을 일본이 쥐고 있는 셈이다.

지난 5년 동안 소재·부품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90조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연간으로 보면 소재·부품 분야의 대일 무역수지는 151억달러(17조7000억원) 적자로, 2014년 이후 5년간 763억달러(89조4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240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과의 교역에서 단 한차례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지난 54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수지 누적 적자는 6046억달러(약 708조원)에 이른다. 수치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일본 의존형 성장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또 압축성장이 가져온 폐혜로 해석할 수 있다. 부품소재 분야에서 일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비단 이번 일본의 수출금지 조치 때문에 불거진 것이 아니다. 산업계에선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과학과 기술이 가져온 현실을 냉철히 씹어봐야 하며, 이번 사태는 어떻게 든 넘길 수 도 있겠지만, 우리 산업의 구조적 현실을 정확히 본 이상, 정부 기업, 학계 등이 머리를 맞대고‘부품소재 분야 해외 의존도’비중 축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만들어여 한다.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부품소재’분야 육성이 산업구조 친일 청산의 시작이 될 것이다. 부품소재 강소기업 육성과 이에 기반한 대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은 어찌 보면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산업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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