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간 합병해 실적 확보, 공사 낙찰 받은 후 합병 무효 소송해 업체 분리
실적 갖춘 업체 만드는 편법 첫사례...법의 사각지대 교묘히 악용, 업계 신뢰 악영향

전기공사 입찰에 필요한 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 간 분할 합병제도가 폭넓게 행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적발돼 제도적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전 배전협력업체 입찰을 앞두고 실적이 부족한 A사와 B사는 실적을 보완하기 위해 합병해 A사 한 곳으로 통합됐다.

그해 11월 중순에 있었던 한전 배전협력업체 입찰에서 A사는 적격업체로 선정돼 계약까지 끝내고 올 초 부터 본격적으로 한전 배전단가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A사가 부족한 실적을 보완하기 위해 합병한 B사와 합병이 잘못됐다고 무효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A사의 소송에 대해 서울 남부지법은 지난 4월 5일 합병무효 판결을 내려 A사와 B사는 2개 회사로 분할이 확정됐으며, 이 두 회사는 분할이 잘못된 만큼 지난 5월 전기공사협회에 원상회복을 요청했다.

문제는 합병을 통해 입찰참가 조건을 충족하고 계약까지 체결했지만, 합병무효 판결로 입찰참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이미 계약한 공사의 계약 여부가 초미의 관심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첫 사례에 대해 전기공사협회는 법률 자문을 통해 다각적인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법률적 판단은 ‘계약해지에 해당한다’와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ㅈ 법무법인은 “전기공사업법과 상법에서 정한 적법 절차를 통해 합병무효 판결을 받은 만큼,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낙찰을 무효화하는 것은 회사의 직업수행 자유 또는 영업의 자유 등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합병무효 절차를 두고 있는 상법의 취지와 목적에 배치된다”고 해석했다.

반면 J 법무법인은 “기망적인 합병을 통해 낙찰을 받는 것은 해당 입찰 절차의 공정성과 공공성이 현저하게 침해당할 정도로 중대한 하자가 있어 입찰 무효에 해당한다”며 “기망적 합병으로 당초 입찰 참가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료돼 한전은 공사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법리적 해석을 통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면서 업계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전기공사협회 모 시 회장은 “이런 상황이 법적으로 허용이 된다면 전기공사업계는 입찰을 위한 합병과 입찰 후 합병무효 소송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혼탁한 시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A사는 한전 배전 협력업체 입찰을 위해 실적업체와 합병한 후 몇 개월 만에 이를 분할해 새로운 실적 업체를 만들어 한전 총가입찰을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상황이 형평성에 맞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실제 한전 배전협력업체 입찰을 앞둔 해에는 업체 간 실적확보를 위해 인수 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부족한 실적을 메워 입찰을 볼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A사는 분할 무효소송을 통해 실적 있는 업체를 확보할 수 있게 돼 실적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입찰을 볼 수 있다. 한전 배전협력업체 대표는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한 사례로 업계 피해가 불 보 듯 뻔한데 이를 방치하는 것 자체가 전기공사업계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도 이런 사례가 처음인 만큼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공사협회는 이번 사례처럼 시장 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위에 대해 재발방지 대책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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